[문화카페] 카덴차

독주자 또는 독창자가 화려하고 기교적인 즉흥적 연주를 들려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을 카덴차(cadenza)라 일컫는다. 이때 흔히 반주를 담당하는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멈춰 모든 관심이 독주자에게 쏠리도록 한다.

카덴차의 끝 부분에서는 연주자가 딸림화음 상에서 힘있는 트릴(trill: 근접한 두 음을 재빠르게 여러번 반복하는 기법)을 연주하며, 이에 뒤따르는 으뜸화음에서 긴 휴식을 끝낸 오케스트라가 비교적 짧고 단호한 성격의 종결부를 연주해 한 악장을 마치게 된다. 카덴차란 협주곡이나 아리아에서 가장 크고 중심적인 ‘종지’인 셈이다.

클래식음악 애호가들은 유명한 솔리스트들이 어떻게 카덴차를 연주하는지 관심이 많다. 어떤 곡은 작곡가가 카덴차를 악보로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저 솔리스트가 즉흥으로 연주하도록 악보로 적어놓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때 얼마나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카덴차를 솔리스트가 연주할지 기대해 보는 것이 음악회의 쏠쏠한 재미이기도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 이 카덴차라는 말이 이탈리아어에서는 그저 ‘종지(악구나 악절, 또는 악곡 전체의 끝맺음)’를 뜻한다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종지를 ‘케이던스(cadence)’라는 프랑스어 ‘까당스(cadence)’에서 유래된 단어로 명명한다. 영어권에서만 위에 소개한 독주자의 즉흥적 연주를 ‘카덴차’라고 구분해 명칭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권과 마찬가지로 ‘종지’와 ‘카덴차’를 구분하고 있다.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으니 정리하자면 이렇다. ‘카덴차(cadenza)’란 원래 이탈리아어에서 모든 ‘종지(기교적 즉흥연주를 포함하든 포함하지 않든)’를 뜻한다.

이 단어와 이것의 프랑스식 용어인 ‘까당스(cadence)’가 영어권에 들어가 전자는 ‘기교적 즉흥연주를 포함하는 커다란 종지’의 뜻을 갖게 됐고, 후자는 그저 모든 크고 작은 ‘종지’를 지칭하게 됐다는 것이다.

외국어에 능숙한 독자들은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 왠지 이 단어들의 어감이 ‘쇠망’, ‘쇠퇴’ 또는 ‘타락’을 뜻하는 ‘데카당스(decadence)’와 비슷하지 않은가? ‘소멸’과 ‘부패’ 등을 의미하는 영어의 ‘디케이(decay)’라는 말도 문득 떠오른다.

그렇다. 이 모든 단어들이 ‘떨어지다’, ‘추락하다’, ‘소멸하다’의 뜻을 지닌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의 동사 ‘카데레(cadere)’에서 비롯됐다.

중세의 시편창법(psalm tone system)이나 흔히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알려진 평성가(plain chant)에서 악구나 악절 같은 어떤 한 단위의 끝맺음은 대개 말할 때의 음보다 높은 낭송음(tenor 또는 reciting tone)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형태를 띄었다. 바로 이러한 형태 때문에 크고 작은 음악적 단위가 끝나는 부분을 ‘떨어짐’ 즉 ‘카당스(cadence)’ 또는 ‘카덴차(cadenza)’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협주곡이나 아리아에서 독주(독창)자의 기교적이고 화려한 ‘카덴차’는 그러니까 한 악장 또는 한 악곡 전체를 대단원하는 커다란 ‘떨어짐’인 셈이다. 그 떨어짐의 순간에 가장 화려하고 정렬적인 독주자의 몸부림을 위치시키는 형식적 안배가 경이롭다.

마치 산란과 죽음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가장 생동감 넘치는 반-엔트로피의 몸부림을 치는 것과 같이 악곡을 끝맺음 하는 ‘떨어짐’의 자리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음악이 피어나는 것이다.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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