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으로 보면, 과학논문과 경제 발전 원동력이 연결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평화로울 때 국방을 튼튼히 해야 전시에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불투명한 미래 경제를 대비해 R&D를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각국의 GDP규모는 그 나라에서 발표되는 과학논문의 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우수한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나라일수록 경제력이 강하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발표한 논문 수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이는 GDP 기준 경제력 순위인 15위보다 앞선다. 그러나 논문의 질적 수준이나 경제적 가치는 떨어졌다. GDP를 발표된 논문수로 나눈 ‘논문의 GDP유발효과’ 지표를 보면 한국은 1천700만 달러로 세계 평균(2천7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3천100만 달러, 일본의 5천300만 달러에 비해 현저히 낮다.
우리 정부의 R&D 투자는 2008년 10조원을 넘어선 이래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17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투자 규모에 비해 국민들이 체감할 만한 뚜렷한 연구 성과나 제품이 아직 많지 않다. 우선, 투자 주체인 정부와 지식생산 주체인 학계 두 부문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또 다른 혁신의 대상은 정부의 지원체계이다.
창의성이 높은 연구결과는 일반적으로 기초과학 분야에서 창출된다.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 주관부서인 한국연구재단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위상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기초과학 연구 지원 기관은 2008년까지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으로 나뉘어 운영됐으나 학문의 융복합 추세와 정부의 국정 방향에 맞춰 2009년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됐다. 하지만 새롭게 출범한 한국연구재단은 예산을 확보하고 인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우수한 기초과학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해야 하는 3박자 조건을 아직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법 제2조제2항에는 ‘재단은 그 활동과 운영에 있어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연구재단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산하기관 중 하나인 정부출연연구 기관에 불과하다.
그러니 선진국의 사례와는 달리 예산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연구재단은 정부와 단독으로 협상할 수 없다. 인사도 그렇다. 재단 이사장은 2009년 개원 이래 4대째이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바뀔 정도로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연구개발사업의 발굴과 기획 그리고 운영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해 진정 창의성 높은 지식을 창출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한국연구재단을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처럼 정부부처 소속이 아닌 독립기관으로 승격시켜야 한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이 기관을 맡아 국회 및 대정부 설득 작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창의성 높은 분야에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관련 회의에 참석해보면 비전문가들로부터 종종 “SCI(과학논문 인용색인) 저널 논문 몇 편 발표하는 것이 무슨 성과냐?”라며 과학기술 논문을 폄훼 하는듯한 발언을 듣는다. 이는 논문 작성 과정에서의 전문적 지적 활동과 논문의 국가경제 견인 효과를 무시하는 근시안적 시각의 결과다.
최소한 SCI논문 100편 이상 발표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국가 연구를 책임지고 주도할 수 있게 해 ‘우수논문 10만 편 시대’와 이를 통한 ‘선도형 창의경제국가’를 앞당기는 노력이 절실하다.
최성화 차세대융합기술 연구원 부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