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가장 삶이 어려운 세대는 단연 노년 세대이다. 75세 이상의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160명 꼴이란다. 물론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청년 세대도 힘든 세대이다. 문제는 이 세대가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한윤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야흐로 후기자본주의의 문제가 불가피하게 파생시킨 인간형이 이들 젊은 세대에 고스란히 낙인 찍혀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한경쟁의 정글로 이루어졌고 이 한국적 특수성은 단 한 가지 룰에 입각한 기이한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기실 경쟁이 아니라 사회 독점 계급을 생산해내고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IMF 이후 대학생들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일자리의 숫자는 줄어드는 현실에서 산다. 따라서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도 잉여 인간이 되고 있다. 이들의 열패감은 대단하다.
그러나 이 낭패감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자기학대로 이어지거나 현실을 비참하게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 루저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냉소가 되고 보수화되고 정치나 사회현실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미술계를 예로 든다면 이전에는 유명 미술대학을 나오면 조교를 거쳐 대개 스승이 심사위원으로 포진되어 있는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자연스레 시간강사를 거쳐 지방대에 취업하거나 머지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운이 좋으면 모교의 교수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유학만 갔다 오면 더 말할 나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학은 필수고 심지어 실기박사학위까지 반드시 요구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외국유학의 매력은 줄어드는 대신 죄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있다. 유학을 마친 이들도 다시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형편이다. 지방대 출신들은 한결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거쳐 학벌세탁을 한다. 그렇다고 대학에 쉽게 전임이 되거나 좋은 작업을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과도한 학벌경쟁, 그로 인한 경제적 지출을 무릅쓰고 그들은 이 한국 사회 못지않은, 더하면 더한 무한경쟁의 미술계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 지위를 갖으려고 올인을 한다.
문제는 그러한 열정과 욕망이 작업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경력 쌓기나 스펙만들기라는 차원에서만 작동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시키면서 행해진다. 내 주변에는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다.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결혼을 꿈꾸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 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청년 세대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탐구하려면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의 특징, 즉 인터넷, 대중문화, 민족주의의 정치성, 취업난, 그리고 파편화된 취향은 모두 한국의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 구조나 현실 역시 이 사회로부터 강하게 견인되어 있다.
아울러 그것이 작업의 경향과 내용을 채우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은 미술, 미술계가 현실과 무관하다고 봐서는 결코 안 된다. 작업이 안 풀리는 것은 삶이 풀리지 않아서다. 사회를, 미래를 총체적으로, 전망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작가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고민하고 미술계를, 자신의 작가로서의 삶을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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