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경기북부 출신 경기도지사?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기자페이지

이한동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연천ㆍ포천에서 11대부터 16대까지 국회의원을 했다. 사무총장(민정당), 대표최고위원(한나라당), 총재(자민련)를 역임했다. 여기에 국회 부의장과 국무총리까지 했다. 한 때 ‘중부권 맹주론’을 설파하며 대권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야말로 정치와 권력의 모든 자리를 섭렵한 80, 90년대 거물이다. 그런 그가 넘어보지 못한 문턱이 있다. 바로 경기도지사 선거다. 1995년 선거에서 안양 출신의 벽에 부딪혔다.

또 한 명의 거물이 문희상 의원이다. 의정부에서 14대 이후 5선에 당 의장과 당대표를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 2차장도 역임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10년, 그는 늘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2006년 출마설이 돌았을 때 그가 이런 얘기를 인터뷰에 남겼다. “내 역할은 주인공이 말을 타고 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마부야”. 이른바 마부론(馬夫論)이다.

이제 민선도 20년째다. 그 사이 다섯 번의 도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 중 경기 출신 4명이 당선됐다. 이인제(1대), 손학규(3대), 김문수(4ㆍ5대). 출마 직전까지 안양, 시흥, 부천을 지역구로 뒀던 정치인이다. 공교롭게 모두 경기 남부다. 다섯 번의 선거에서 유력정당의 기호인 1, 2번을 배정받았던 후보들 대부분이 남부 출신이다. 북부 출신으로 선거를 뛴 후보는 임사빈이 유일하다. 아무도 공천을 주지 않은 무소속 신분이었다.

민선 시대 권력은 선출직 장(長)으로부터 나온다. 도정은 도지사가, 시정은 시장이 권력의 원천이다. 이러다 보니 후보와 이런저런 연을 맺고 있는 그룹들이 내일처럼 지방선거판에 뛰어든다. 애교심(愛校心)을 이유로 동문 후보를 밀고, 애향심(愛鄕心)을 이유로 고향 후보를 민다. 하지만 이중 어떤 것도 경기 북부와는 연이 없다. 적어도 도지사 선거에 관한 한 그랬다. 북부 주민은 그저 당(黨)이 점지해준 남부 출신 후보를 보고 찍을지 말지를 결정하면 됐다.

이제 여섯 번째다. 이번은 어떨까. 일단 북부 출신이 여럿 뵌다. 북부의 김영선(고양) 전 의원과 북동부의 정병국(양평ㆍ가평) 의원이 깃발을 들었다. 여기에 북서부의 유정복(김포) 장관도 거론된다. 김 후보는 당대표 출신의 여성이고, 정 후보는 장관 출신의 4선이고, 유 후보는 현직 장관이며 친박이다. 명함의 앞뒷면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을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후보군의 수나 면면에서 모처럼 경기 북부가 도지사 선거의 중심에 선 듯 보인다.

문제는 당선될 것이냐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싸움의 기본조건인 인구에서 밀린다. 경기 북부는 11개 시군에 343만명이다(2013년 4월 말 현재). 남부에는 여기에 3배 가까운 903만명이 산다. 남부 출신의 후보들은 이번에도 일찌감치 진을 쳤다. 원유철(평택)ㆍ김진표(수원)ㆍ원혜영(부천) 의원이다. 저마다 부지사 출신, 부총리 출신, 시장 출신의 스팩을 자랑하는 현역 의원들이다. 혹여라도 ‘남-북’ 대결로 간다면 북부 출신에게 유리할 게 없다.

하지만, 설혹 그렇더라도 ‘북부’는 얘기돼야 한다. 북부 출신의 무더기 출사표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남부 중심의 선거가 북부 중심의 선거로, 900만끼리의 선거가 300만도 함께하는 선거로 바뀌어 가는 불쏘시개다. 원유철 후보를 북부로 부르고, 김진표 후보에게 북부 공약을 말하게 하고, 원혜영 후보에게 2청 개혁을 약속받아 내는 마중물이다.

모든게 김영선, 정병국이 나오고 유정복이 거론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래야 도지사 선거 아니겠는가. 북부 출신이 나와 북부의 자존심을 얘기하고, 이에 놀란 남부 출신이 북부 사랑을 쏟아내는 선거. 900만뿐 아니라 300만도 표를 무기로 당당히 후보를 윽박지를 수 있는 선거. 이것이 진짜 1천200만의 경기도지사 선거다.

지난해. 김희겸 북부 부지사가 취임했다. 그의 나이 쉰하나다. 모두들 ‘젊은이가 왔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 코미디 같은 얘기 속에 소외받은 ‘북부 20년’이 있다. 매번 ‘갈 참’들이 임명됐다. 일할 시간도 없었고 일해야 할 미래도 없었다.

이런 인사(人事)가 이어지면서 북부 행정은 침체됐고 북부 지역이 소외됐다. 이런 엄연한 북부 홀대의 역사가 지금도 도청 문서고(文書庫)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두 남부 출신 도지사들이 서명(署名)한 역사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경기북부 출신 경기도지사?]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