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234 소망’ 담아… 환우 향한 헌신의 땀방울
다소 생소한(?) 이 숫자들의 나열은 무병장수를 소망하는 어르신들에게 매우 익숙한 숫자들이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정도만 아프고 세상을 뜨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주문을 담고 있는 것. 그만큼 노년층의 ‘병원 신세 안 지고 건강하게 살다 죽기’는 오랜 소원이다. 그리고 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365일 병들고 아픈 환우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의 숫자만 20만 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지난 2013년 6월 말 기준으로 산후조리원, 사회복지시설 등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이 중 이색적인 수치가 눈에 띈다.
바로 금남(禁男)의 구역으로 여겨졌던 간호업무의 영역을 남성의 힘과 우직함으로 뚫었다는 방증을 보여주는 남녀 성비 현황 자료가 그것. 전체 간호조무사 비율 중 5%가량을 차지하는 남자 비율은 실제 임상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자 간호조무사의 수가 1만여 명에 달한다. 이에 기자는 아프고 병든 이들의 도우미이자 전문 의료진의 서포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남자 간호조무사의 영역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향한 곳은 파주시민들의 건강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원장 김현승).
특히 젊은 환우들보다 나이 지긋한 연배의 어르신들이 무병장수의 소원을 안고 찾는 파주병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일일 도우미로서 환우와 의료진의 좋은 친구가 되리라 다짐한 이날의 체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환우들의 든든한 도우미로서 활약 다짐
먼저 기자는 일일체험에 대한 병원 측의 협조를 구하고자 우문 행정과장을 찾았다. 우 과장은 기자와 동행해 김현승 원장으로부터 병원에 대한 안내를 담은 영상물을 틀어줬다.
영상물에는 생의 최후를 병원서 맞이한 환우들과 가족들의 애끊는 심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영상물의 상영이 끝나 촉촉한 눈물이 마르기도 전 김 원장은 이내 송곳 같은 지시로 기자를 긴장시켰다.
환우 가족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자 전문 의료진의 서포터 역할은 만만한 체험이 아닐 것이라는 겁박(?)에 순간 움찔한 것.
하지만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지로 제일 먼저 병원 1층 로비서 민원안내도우미로서 친절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는 체험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미션 1. ‘함박웃음으로 내원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오전 9시. 이른 시각이었지만 민원실은 일찍부터 몰려든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내 지희자(61)·주상란(48)·강운영(47)·전복례(48)씨가 1팀을 이뤄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병원을 찾는 고객들의 불편을 해결해나갔다.
자원봉사자 선배인 지희자씨는 “민원인들이 파주병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대하는 안내도우미는 파주병원의 이미지를 좌우함으로 활짝 웃는 웃음으로 고객을 대해야 한다“며 자상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꼿꼿하게 취재 일선에 굳어진 어색한 미소며 자세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되돌아왔다.
◇미션 2. ‘베드운전 초보딱지를 떼라’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기자는 휠체어 대여 파트로 배정되어 대여인의 신분증을 제시받아 기재 후 반환받은 휠체어를 간단한 소독 절차를 마치고 다시 보관하는 작업을 마쳤다.
이어 기자에게 부여된 임무는 노환으로 입원한 김복임(96·여) 할머니를 CT 촬영을 위해 베드로 이동을 시키는 역할.
다행히 공익요원이 배치돼 함께 이동했지만 기자는 긴장의 탓에 몸에 힘이 반짝 들어갔다. 링거를 꼽은 할머니는 의식이 있는 듯 없는듯한 상태에서 초보 운전자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온몸은 이미 흠뻑 젖었다.
다행스럽게 4층 입원실에서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CT 촬영실까지 무사히 도착, CT 촬영기 앞으로 이송해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데 성공했다.
◇미션3. ‘어르신들과 소통으로 울적함을 달래라’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하며 병실을 나서자 환자들의 휴식공간인 휴게실이 눈에 들어왔다.
휴게실을 찾은 여러 입원환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휴게실에서 장기를 띠던 김복남씨(56세)는 자원봉사자의 복장을 착용한 기자를 보고 “수고가 많다”며 격려해줬다.
어르신들에게 때아닌 애교도 부리며 살갑게 다가가는 기자의 모습에 덕담과 여유가 오갔다.
김복남씨는 “병원이 친절하고 간호조무사들이 일일이 케어해줘 아주 고맙지만,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기분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입원한 지 한 달여가 다 되가는데 답답해서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말해 기자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힐링의 아이콘, 그들에게 박수를
이날 하루는 기자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줬다. 병원은 이미 치료의 공간이 아닌, ‘힐링’을 선물하는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전문 의료진의 예리하고 정확한 치료와 마음 따뜻한 동네 아줌마 같은 자원봉사자, 그리고 환우들의 말벗이자 소통의 창구인 간호조무사가 있었다.
특히 남성으로서 친절과 배려의 마음으로 환우들의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든든한 의료인으로서 보건의료에 앞장서는 남자 간호조무사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마음 놓고(?) 의료혜택을 받으며 건강 100세 시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천근처럼 무겁던 자원봉사자 조끼를 벗고 평상복으로 돌아온 기자는 체험을 마쳤다는 안도보다는 이웃의 아픔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희망찬 ‘행복’을 느끼며 병원문을 나섰다.
파주=박상돈기자 psd1611@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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