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가 반격에 나섰다. “내 장인은 좌익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다. 나는 그걸 알고 결혼했고, 아들 딸 잘 낳아서 군대 보내고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내가 버려야 하느냐”.
이인제-노무현의 경선은 그렇게 격했다. 그사이 이회창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1천300만의 ‘小통령 선거’
박근혜 후보가 공격했다. “자식교육에 당당하지 못하고 교육을 개혁할 수 있겠느냐. 부동산 문제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동산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 BBK 의혹에 대해서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후보로는 안 된다”고 퍼부었다. 이명박 후보가 반격했다. “4월에도, 7월에도 이명박은 한 방에 간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한방이 아니라 헛방이었다”.
박근혜-이명박의 경선도 격했다. 이번에는 정동영이 TV에서 작아졌다. 그리고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두 번 모두 사생결단의 싸움이었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싸웠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노 후보와 이 후보는 이후 만나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가 청와대로 들어갔을 때 이인제 후보는 재판정으로 들어갔다. 이 후보와 박 후보 사이에도 큰 앙금이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 밑에선 친박이 어색했고, 박근혜 대통령 밑에선 친이가 어색하다. 둘 다 아름다운 경선과는 거리가 멀다.
역설(易說)이다. 이런 격한 경선이 매번 화려한 본선 성적표를 만들었다. 2002년 초, 새천년 민주당의 해는 서산을 넘고 있었다. 그런 정당이 피투성이 경선을 거치며 살아났다.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2007년 초, 한나라당의 기세가 등등했다. 유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격한 경선의 효과는 뚜렷했다. 최고 득표율이라는 신기록이 만들어졌다.
두 번의 경선은 한국 선거에 중요한 기술을 전수했다. ‘선거에 이기려면 경선을 하라’가 첫째고, ‘아름다운 경선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가 둘째고, ‘제아무리 격한 경선도 표의 이탈은 없더라’가 셋째다.
어느덧 도지사 선거가 석 달 앞이다. 남경필ㆍ원유철ㆍ정병국ㆍ김영선 후보가 나왔다. 반대쪽엔 김상곤ㆍ김진표ㆍ원혜영ㆍ김창호 후보가 나왔다. 생활 속 정치도 시작됐다. 지겹게 듣는 질문이 ‘누가 될 것 같으냐’고, 그만큼 듣는 얘기가 ‘누가 될 것이다’다. 이만큼 의미 없는 질문과 부질없는 대답도 없다. 그걸 어찌 알겠는가. 맞춘들 우연이다.
하지만, 이기는 방법은 확실하다. 31개 시군을 순회경선 하면 이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그간 지방 선거의 축은 도지사 선거와 시장ㆍ군수 선거였다. 내 동네 대표를 뽑는 선거에 대한 관심은 특히나 컸다. 그런데 그런 시장ㆍ군수 선거가 정치에서 떨어져 나갔다. 야당의 무공천으로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정치 선거의 재미는 도지사 선거뿐이다. 1천300만이 지켜보는 ‘소(小)통령 선거’가 됐다.
사정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순회경선을 하라는 거다. 돈이 없고 시간이 부족하다면 몇 곳씩 묶어서라도 돌아야 한다. 인구 100만인 도시에서도 해야 하고, 인구 5만인 도시에서도 해야 한다. 안성 1등이 연천에서 꼴등하고, 파주 1등이 용인에서 꼴등 하는 경선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된 후보는 본선에서 지지 않는다. 그렇게 모아진 여론은 본선에서 배신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질 조건이 격렬함이다. 반드시 난타전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새롭게 폭로될 비밀도 있고, 이미 알려진 비밀도 있고, 알려졌지만 쟁점이 되지 않았던 비밀도 있다. 어차피 본선 상대에겐 비수로 숨겨져 있는 비밀이다. 이걸 먼저 폭로하고 격하게 토론하는 경선이 돼야 한다. 노무현의 ‘좌익’과 이명박의 ‘BBK’가 본선에서 터졌더라면 역사는 달라졌다.
대통령 경선 방식 택해야
‘거친 경선이 본선을 담보한다’. 이제 이 기술을 모르는 정치인은 없다. 그런데도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이 기술을 써먹자는데는 다들 멈칫거린다. 왜 그럴까.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일까. 추대되고 싶은 욕심? 감추고 싶은 비밀? 숨겨야 할 과거? 드러날지 모르는 밑천? 그래 봐야 어차피 다 보여질 욕심, 다 알게 될 비밀, 다 눈치 챌 과거, 다 드러날 밑천이다.
미련 버려라. 그리고 경선해라. 이왕이면 거칠게 해라. 그게 이기는 길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이기고 싶은가? 시군돌며 거칠게 경선해라 -경기도지사 선거-]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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