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 한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 加左右手).” 손무(孫武)가 쓴 ‘손자’ 가운데 ‘구지편(九地篇)’에 나온다. 오월동주(吳越同舟)로 더 익숙하다. 서로 다른 뜻을 품은 세력끼리의 전략적 제휴다. 우리네 정치사에서도 숱하게 보는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가 1월 1일 현충원을 찾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2년 9월 20일에도 똑같은 수순의 참배를 했다. 두 번 모두 ‘역사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취지의 방명록을 남겼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나 김한길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그만의 색깔이다.
하지만 김상곤 전 교육감은 달랐다. 그의 첫 공식 행보도 묘역 참배였다. 13일 현충원과 마석 모란 공원을 찾았다. 현충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란 공원에서는 전태일 열사, 김근태 고문, 문익환 목사의 묘를 참배했다. 하지만 지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들르지 않았다. 오후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안철수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참배할 생각이 없다.’
안 대표의 복지관(觀)은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결합이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던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예민하게 충돌했던 요소 중 하나다. 결국 신당은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보편과 선별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는 정강을 택했다. 민주당이 안 대표의 생각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보편과 선별의 조합’이란 초안이 다소 길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김 전 교육감은 이것과도 다르다. 공교롭게 첫 공약이 무상버스다. 무상 급식에 이은 두 번째 무상 시리즈다. 무상급식은 우리 복지사(史)에서 보편적 복지를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린 정책적 효시다. 그때의 이념, 그때의 방식 그대로다. 소득의 많고 적음, 나이의 늙고 젊음을 따지지 않는다. 무상ㆍ공짜 복지에 대한 당 내외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보편적 복지는 기본적 인권’이라며 한 발 더 나갔다.
안 대표는 산업화 세력 끌어안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대중 6ㆍ15 선언’과 ‘노무현 10·4 선언’이 논란을 빚은 것도 이 대목이다. 안 대표는 ‘빼려 한 적 없다’고 해명했으나 손 보려 했던 것만은 맞는 듯하다. 결국 최종 정강에는 이 두 개의 선언에 ‘박정희 7ㆍ4 공동성명’과 ‘노태우 기본 합의서’가 더해졌다. 안 대표의 보수 끌어안기가 가장 상징적으로 현시화(顯示化)된 부분이다. 산업화 시대의 공(功)을 명문으로 내건 것이다.
하지만 김 전 교육감은 여기서도 달라 보인다. 사실상의 첫 민생 투어로 양평 두물머리를 택했다. 두물머리는 진보진영엔 투쟁의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보수정권의 4대강 사업에 맞서던 본산이다. 생명 평화 미사가 930일간이나 이어졌다. 그때의 투쟁사가 기록된 영화 ‘두물머리’는 지금도 진보진영에 영향력 높은 학습자료다. 그런 곳을 첫 방문지로 찾았는데, 하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던 26일이다. 우연치곤 상징성이 너무 짙다.
김 전 교육감은 ‘안철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런데 다르다. 작정한 듯 반대편으로 내달리고 있다. 한쪽은 집요하게 우향우, 다른 쪽은 고집스럽게 좌향좌다. 6.4 선거라는 태풍을 맞아 한 배에 올랐으면 ‘좌우의 손이 협력하듯(加左右手)’ 보듬을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은 없다. 때론 힘을 겨루는 듯 보이고, 때론 애초에 남이었던 듯 보이고, 때론 이별을 작정한 듯 보인다. 참으로 이해하기 난해한 조합이다.
오 나라의 왕 합려(闔閭)가 월 나라의 왕 구천(勾踐)에게 패했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복수를 다짐했다. 다음 싸움에서 부차가 구천을 물리쳤다. 구천의 아내가 부차의 첩이 됐다. 이번엔 구천이 쓸개를 매달아 놓고 이를 핥아 가며 복수를 다짐했다. 둘의 싸움은 한 쪽(구천의 월)이 다른 한 쪽(부차의 오)을 패망시키면서야 끝났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역시 우리네 정치사에서 흔히 보는 끝이다.
결국 오월동주의 숨겨진 다른 말은 와신상담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슈&토크 참여하기 = 안철수ㆍ김상곤, 한 배에 탄 거 맞아?]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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