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몬테베르디를 아십니까?

음악은 당연히 기쁜 음악과 슬픈 음악으로 나뉘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음악을 들으면 즐거운 기분이 드는데 어떤 음악은 슬픔을 느끼게 해준다.

음악은 예로부터 응당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즐거워하는 등의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되겠지만, 서양음악사에서 이렇게 인간 개개인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개별적 인간과 그의 개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16세기 말~17세기 초에야 비로소 소수 선구적 음악가들이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가감 없이 표현하여 듣는 이를 감동시키도록 하는 새로운 양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양음악사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바로크시대(Baroque Era)’가 시작된다고 기술한다.

바로 이 시기의 정점에 있는 작곡가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1567~1643)이다. 그의 잊혀진 오페라 ‘아리아나(L’Arianna)’에 등장하는 ‘아리아나의 비가(Lamento d’Arrianna)’는 마치 춘향전의 ‘쑥대머리’처럼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려 노래하는 이가 표현하는 슬픔에 저절로 빠져들게 만든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연기에 몰입되어 마치 내가 겪는 일인 양 눈물을 흘리는 것과 흡사하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 이전에 등장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어떤 음악도 이와 같이 슬픔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대에서 연기(연주)하는 이의 감정을 관람하는 사람이 동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몬테베르디를 비롯한 이 시기 공연 예술가들의 공통된 목적이었으며, 이후 전개되는 서양 예술음악 발달을 위한 매우 중요한 방향설정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으로부터 진한 동감을 자아내기 위해 몬테베르디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감정은 크게 ‘겸손 또는 기도하는 마음 (humilt또는 supplicatione)’, ‘절제(temperanza)’, 그리고 ‘분노(ira)’의 세가지 인데, 당시의 음악 양식은 겸손과 절제 두 가지를 표현할 수 있지만 세번째인 분노를 표현할 수 없다는 고민이었다.

이에 몬테베르디는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양식, 즉 스틸레 콘치타토(stile concitato·격정의 양식)를 창안해 냈다. 이는 현악기에서 한 음을 재빠르게 아래위로 여러번 활쓰기를 하여 연주하는 트레몰로(tremolo)라는 주법으로 표현된다.

오늘날에는 이미 일반적인 주법이지만, 당시에는 연주자들이 트레몰로 연주하기를 거부하는 소동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주법은 곧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 의해 분노의 감정 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이나 폭풍우 등의 자연을 묘사하거나 (비발디의 사계) 신의 위엄 (핸델의 메시아) 등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어떤 것이 우리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천재적 예술가란 바로 몬테베르디처럼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이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눈물을 자아내도록 슬픈 음악, 강렬하게 분노와 격정을 표현하는 음악은 몬테베르디 이전에는 소위 듣도 보지도 못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바로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예술가에게 매우 필요한 덕목이다. 필자는 부끄러워진다.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 미주리주립대 박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