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이 이르기를 ‘하늘의 마음은 인군을 친애한다. 재이(災異)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군의 덕을 굳게 하려는 것이요, 재해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군의 의지를 근실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덕을 굳건히 하고 의지를 근실하게 한다면 현재의 황사비는 바로 미래의 감로수이자 단 샘물이 될 것입니다.” -남효온(南孝溫)이 성종에게 올린 상소문 중에서-
‘윤리 도덕이 바로 서고 정치와 교육이 잘 이뤄지면, 해와 달이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바람과 비가 제때 와서 행운의 별이나 상서로운 구름이나 단맛 나는 샘물 같은 좋은 조짐이 생긴다. 반대로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정치와 교육이 엉망이 되면, 해와 달이 흉한 일을 알리고 바람과 비는 재앙으로 바뀌어 산이 무너지며 가뭄이 드는 변괴가 일어난다.
‘-이색(李穡)ㆍ’西京風月樓記’-
법은 최소한의 도덕
조선조 공직관(公職觀)은 그랬다. 자연재해를 실정(失政)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라고 여겼다.
절대 군주조차 이런 재이론(災異論) 앞에 고개를 숙였다. 역병이 돌면 반찬을 줄이는 감선(減膳)과 술을 끊는 철주(撤酒)로 근신했다. 태조 이성계는 15차례의 감선과 9차례의 철주를 했다. 1518년 5월, 하루에 세 차례나 지진이 났다. 중종이 “사람을 쓰는 데 잘못이 있을까 항상 두려워하는데도 재변이 이러하니 더욱 두렵다”며 스스로 자책했다. 이게 500년 왕조를 지탱한 ‘덕치(道治)’다.
덕치의 기본은 책임정치다. 그리고 이때의 책임은 법치를 훨씬 넘어서는 무한책임이다.
하물며 인간이 빚은 재앙이다. 규정을 넘는 화물을 실었다. 항로를 벗어난 곳으로 갔다. 배가 뒤집히자 승객을 버리고 달아났다. 세월호에 탄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실종자 수도 못 헤아렸다. 부표를 배에 매다는 데 3일씩 걸렸다. 공기를 주입하는데도 4일 걸렸다. 그 사이 죄 없는 애들이 죽어갔다. 재난을 극복해야 할 인간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법률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의 구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간다. 시간이 가면서 법률적 책임만 부각된다. 선원 12명이 모두 구속됐다고 보도됐다. 선장에겐 사형이 구형될 수 있다고 한다. 선주(船主)에게 적용된 혐의가 횡령ㆍ배임ㆍ탈세ㆍ강요ㆍ뇌물ㆍ재산 도피 등 6개나 된다고 한다. 합동수사본부 발 이런 자료들이 연일 신문 방송을 도배하고 있다. 어차피 법전(法典)에 따라 엄벌에 처해질 일이었다. 뭐가 충격적이고 뭐가 새롭나.
국민의 분노는 이미 그 범위 밖이다. 불법적 항해를 묵인해온 정부, 구조 시간을 허비한 정부, 사태 파악에 실패한 정부. 그래서 단 한 명의 아이도 구해주지 못한 정부. 이런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그 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들과 그런 공무원을 지휘하는 장관(長官)의 책임을 묻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 그 부모를 지켜보는 국민들이라면 당연히 추궁해야 할 정부의 책임이다.
이런 목소리를 윽박지르면 안 된다. 정부의 책임을 말하는 것을 정치적 의도라 하고, 담당 장관의 경질을 말하는 것을 마녀사냥이라 하면 안 된다. 애들 죽어가는 배에 들어가 밧줄 묶는 데 6일씩 걸린 정부를 탓하는 게 정치적인가. 죽음의 탈출이 이어지는 순간에 경찰 졸업식에서 화이팅하며 사진 찍은 장관을 탓하는 게 마녀사냥인가. 틀림없는 그네들 책임이다. 그런데도 입 닫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法 넘어서는 책임행정
‘법과 원칙에 따라’가 사달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 이 구호가 문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근대 법학이 입문부터 가르치는 법언(法諺)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도덕이라면, 법은 그 도덕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어디에도 역병과 지진을 임금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임금은 역병 앞에 곡기를 줄였고 지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게 바로 ‘법과 원칙’을 뛰어넘는-이 시대가 배워야 할- 공복(公僕)의 무한책임 정신이다.
애들 5명이 목숨을 잃었던 지난해 해병대 캠프 사고, 교관 3명의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도 물었어야 했다. 대학 신입생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던 올 초 리조트 붕괴 사고, 업자 21명의 법적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도 물었어야 했다. 아직 몇 명의 사망자가 나올지 가늠도 할 수도 없는 이번 세월호 참사, 선원 12명에 대한 법적 책임뿐 아니라 장관(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책임이 ‘법과 원칙’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고 넓은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 ‘법 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더 안전해 질 수 없고, ’원칙 대로만 책임지는 사회’는 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법과 원칙에 따라’의 함정 -法만 피하면 책임 안 지는 사회로 간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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