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연 새 인천시교육감은 이런사람!

[LIFE HISTORY Who 그는 누구인가]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인
평생 교직에 몸담아… 교육현장의 민주화·개혁 주도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인은 전교조 설립에 주도적이었던 교사 1천500명이 대량 해고될 때, 그 역시 해고를 피할 수 없었다. 1994년 복직될 때까지 4년 7개월을 거리의 교사로 살았다.

교직을 떠나겠다는 결심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교육 현실 앞에 놓인 거대한 벽을 한번 넘어보자고 결심했다.

 

■ 사과향기 그윽한 예산에서의 골목대장 시절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당선인(60)은 충청도 예산 출신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4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흔히들 충청도 사람을 가리키는, 시쳇말로 ‘우직한 놈’이 바로 그다. 오지랖도 넓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그는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넘쳐났다.

기를 못 펴는 친구, 외롭게 소외되는 친구 등 다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골목대장이었다. 그렇게 잘 놀고도 공부도 그럭저럭했다. 없는 살림에도 홍성의 중학교로 진학했다. 사람 좋기만 하고, 부양능력은 좀 모자랐던 부친을 대신해 형님이 그 뒷바라지를 했다. 가난하지만, 정이 넘치던 유년시절이었다.

■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하다.

없는 살림에 홍성까지 ‘유학’갔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가도를 달려줬으면 좋았으련만, 가족의 기대와 달리 고교 시절 이 당선인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정신이 팔려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 시절 함께 어울려 놀았던 친구들은 여전히 그가 무엇을 하든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서는 든든한 지원군들이다. 지난 2010년,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도 굳은 일을 도맡아 했던 사무장은 그 시절 친구다.

덕분에 재수 끝에 교대에 진학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을 통틀어 그가 가장 잘했던 일은 친구와 함께 어울리고, 친구의 어려움에 함께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교사가 돼 그 일을 평생에 걸친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 열정 하나 무기로 시작했던 교직생활

이 당선인은 교사 적체 현상으로 교대를 졸업하고 나서도 일 년 반이 지난 1976년 6월에야 첫 발령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생전에 교단에 서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큰 회한으로 남아 있다.

첫 부임지인 경기도 연천은 농촌마을이라 이 당선인에게는 고향처럼 편한 곳이었다. 방과 후 아이들의 웅변지도를 담당하는 등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의욕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당시의 학교는 병영식 학교문화가 지배적이었다. 학교장이 사사건건 교사들에게 간섭하고, 교사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 당선인은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다는 생각이 컸다. 대신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시간이 날 때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 전교조,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

이 당선인이 교육현장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목격할 기회는 정말 뜻하지 않게, 사소한 계기를 통해 찾아왔다.

6월 민주화 대투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으로 전국 곳곳이 들썩거리던 지난 1987년 9월의 일이었다. 열정적으로 교직생활을 하는 한 후배 교사가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했다. 주안5동 성당에서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교육 현실을 논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교장·교감·교무주임 등이 입구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멋모르고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인사하며, 아는 체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임을 제지하고, 누가 참석했나 확인하려고 나온 것이었다. 결국, 그날 모임은 열리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학교현장을 바꾸려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지난 1989년 교육현장의 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전교조가 설립됐고, 그는 주저없이 그 일원이 됐다. 전교조 설립에 주도적이었던 교사 1천500명이 대량 해고될 때, 그 역시 해고를 피할 수 없었다. 1994년 복직될 때까지 4년 7개월을 거리의 교사로 살았다.

지난 2001년에는 전교조 인천지부장직을 맡았고, 교육위원에 당선돼 교단을 떠나기 전까지 전교조는 항상 그의 활동의 뿌리였다. 전교조를 만난 것이 그의 삶을 바꾼 첫 번째 전환점이다.

■ 학교를 넘어선 새로운 도전, 교육위원 활동

이 당선인에게 도전과 결단의 시기가 왔다. 교실에서 일으키는 바람만으로 학교의 변화가 너무 더디다는 공감대가 전교조를 비롯해 동료교사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지난 2006년, 그는 결국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교직을 떠나겠다는 결심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교육 현실 앞에 놓인 거대한 벽을 한번 넘어보자고 결심했다.

당시의 교육위원 선거는 학교운영위원들이 선출하는 간접선거 방식이었고, 그는 과거 교직생활을 했던 남동구와 연수구 학생들의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어 교육위원에 선출됐다.

이 당선인의 교육위원 활동은 소외되고 차별받는 아이들, 한 명의 아이들도 놓치지 않는 교육을 위해 제도와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학교와 지역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배운 자원봉사센터 활동

이 당선인의 두 번째 전환점은 인천광역시 자원봉사센터 회장으로 활동한 지난 3년 세월이다. 지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0.3%라는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그는 자원봉사센터 활동에 뛰어들어 시민의 ‘삶의 현장’을 몸소 체험했다.

자원봉사센터 활동은 어렵고 소외된 시민에게 어떤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지, 교육정책과 행정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지역사회와 학교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김민기자 suein84@kyeonggi.com

프로필 이청연

● 출생 1954 충남 예산 출생(만 60세)

● 학력 홍성고등학교 졸업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 경력 서림·부평동·신현·주안북·연학·간석·연수 초등학교 교사(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장(전)

인천광역시교육위원회 교육위원(전)

2010인천광역시 교육감 후보

인천광역시 자원봉사센터 회장(전)

친환경 무상급식 안전지킴이 공동단장(현)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 공동대표(현)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운영위원(현)

인천광역시의료원 발전자문위원회 위원(현)

인천광역시체육회 이사(현)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자원봉사 전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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