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투표 결과는 우리나라의 팽팽한 보·혁 대결구도를 가감 없이 보여줬지만, 우리 국민은 여전히 보수적 성향을 강하게 띄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서양음악사도 역시 진보와 보수의 대결 구도로 전개돼왔다. 물론 그 갈등이 정치사에서처럼 혁명이나 전쟁 등의 소용돌이를 잉태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작곡가들은 항상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보 또는 보수의 진영에 속해 경쟁하면서 작품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러한 진보·보수의 기운은 음악사의 풍성한 변증법적 전개를 이뤄낸 동력이 됐다.
중세 후기인 14세기에 이미 중요한 진보·보수의 대결이 있었다.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를 비롯한 프랑스의 몇몇 진보적 작곡가들은 음악에서 리듬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인식했으며 리듬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표현하고자 새로운 기보법을 만들었다. 이를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라고 한다.
이에 대항해 드 리에지(Jacques de Lige) 등의 음악가들은 아르스 노바의 음악이 복잡한 리듬과 정제되지 않은 화성 때문에 듣는 이를 괴롭게 할 뿐이니 과거의 양식 즉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구예술)’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오늘날 드 리에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리듬만이 아니라 화성 및 악곡 구조의 탄탄함을 보여준 아르스 노바의 음악양식은 이후 15~16세기에 꽃을 피운 르네상스 음악의 양식적 토대를 제공했다.
16세기 말~17세기 초 진보적 음악가들의 과제는 이와 조금 달랐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언어에 더 충실한 음악이 필요했으나, 당시의 음악양식은 여러 개의 성부가 동시에 등장하는 다성음악(polyphony)으로 그러한 목적에 들어맞지 못했다.
이들은 감정을 충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독창과 이를 반주하는 지배적인 베이스 선(basso continuo)의 두 굵은 선을 뼈대로 하는 더 간단명료하면서도 감정표현이 짙은 양식을 창안해 냈다. 이를 ‘모노디(Monody)’, ‘스틸레 모데르노(Stile modern·근대양식)’, ‘제2작법(Seconda prattica)’이라고 일컬으며, 카치니(Giulio Caccini)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등이 이 양식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다.
당시 아르투지(Giovanni M. Artusi) 같은 보수적인 작곡가들의 반발이 거셌다. 아르투지는 이러한 새로운 양식으로 된 몬테베르디의 음악이 화성 규칙에 어긋나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며 교조주의적 견지의 비판을 펼쳤다.
그러나 카치니와 몬테베르디 등은 이 모노디 양식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유행하고 있는 장르인 오페라의 기초를 다졌으며, 이 양식은 17~18세기 바로크 음악의 근본적 구조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항상 진보적인 음악가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사에도 알맹이 없이 잠깐 등장했다가 도태되는 진보의 예가 있다. 바로 14세기 말의 ‘아르스 숩틸리오르(Ars subtilior·미묘한 예술)’가 그 예이다. 당시 교황청이 있던 아비뇽을 중심으로 유행한 이 양식은 아르스 노바의 새로운 리듬 양식을 기교와 과장이 강조된 극단성으로 끌고 간 것이다.
악보를 보면 현대 아방가르드 작품을 방불케 하는 복잡한 리듬과 화성이 두드진다. 무언가 참신하고 혁신적이려는 몸부림이 보이지만, 겉으로만 과시하는 복잡함과 미묘함일 뿐 예술적 깊이도 진솔함도 결여 돼 있다. 이 양식은 이후 어떠한 영향도 발전도 이루지 못하고 곧 사라져버린다. 실력 없는 진보의 운명은 그런 법인가 보다.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