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떠나는 이주노동, 곧 사우디아라비아나 독일(서독)에서 우리의 아버지 삼촌 또는 이모나 고모들이 가족의 생계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떠났다.
그러나 지금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 더 나아가 동 유럽에서도 내 나라 대한민국으로 이주노동을 위해 러시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결혼이주여성을 포함하여 150여만 명을 헤아린다. 이역만리 물설고 낯 설은 땅으로 정든 가족들을 뒤로한 채 찾아 온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비장해야 가능한 일이었을까?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떨리는 입술을 깨문 채 다짐에 또 다짐을 하면서 왔을 것이다.
꿈 위해 찾아온 이주민 보살펴 줘야
“기어이 Korean Dream을 이루리라”
대한민국에서 꿈을 이루게 된다면 이 나라는 그와 그의 가족들 특히 그의 자녀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나라로 남게 될 것이며,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한 때 자신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이었던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자랑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자녀가 훗날 그 사회의 중요 인사가 된다면 친한파 인물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사람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전 세계에 수백만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장한 각오만큼이나 양날의 검이 될수도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주노동자들을 홀대하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다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 방지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갖가지 문제들 중 베트남 정부가 실시하는 ‘귀국보증금 예치제도’ 는 우리 정부가 베트남정부에 불법체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 도입을 중단하였고, 또한 이주노동자 송출재개 조건으로 불법체류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를 하면서 생긴 제도이다.
결국 베트남정부는 위의 제도를 내놓으면서 올해 3월부터 베트남 노동자들을 다시 송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베트남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귀국보증금 540만원을 포함해서 1천만원이 넘는다.
이주노동자들의 미등록 체류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엄청난 금액의 송출비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불법체류를 방지하겠다고 내놓은 ‘귀국보증금 예치제도’는 미얀마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미등록자들을 양산하는 불명예스러운 제도가 될 것이다.
필자는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을 경험하고 이제는 본국에 돌아가 자리를 잡은 사람들 중 위의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경우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들 하나같이 자국에서 자영업으로 자리를 잡아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어쩌다 만나게 되는 한국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식사까지도 제공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꿈은커녕 마음에 상처와 분노만을 가지고 돌아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사람들을 쏘아 보면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
13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석재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쌓아 둔 대리석이 무너지면서 오른 쪽 다리에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친구였다.
필자가 잘 아는 실력 있는 정형외과 원장님의 수술로 병원 입원 치료 5개월 만에 퇴원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친구는 방글라데시에서 완전히 자립을 했고 자칭 방글라데시의 한국 홍보대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고 후 회사 측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지극정성으로 살폈고 병원에서도 원장님 이하 모든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살펴준 때문이었다.
어떤 동물이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이라면 이 동물을 하나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개체로 보아야 하는가?의 질문에 가장 현명한 답은 그 하나의 몸에 물리적인 힘을 가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머리 두 개가 각각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두 마리이고, 만약에 두 개의 머리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한 마리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인 고용주와 외국인 노동자는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그들은 한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한 몸으로서의 동료이다.
그것을 인식한 고용주는 외국인의 사고에 같이 아파하면서 정성을 다해 살펴주었다. 그 결과 돈 한 푼 안들이고 현지인 한국 홍보대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모이면 군대얘기로 밤을 새운다.
그것은 필시 현대 한국 남성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이주사건이 바로 군에 입대하여 꽃다운 청춘을 바쳤기 때문일 것이다.
긍정적 인식이 현지인 외교관 낳아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우리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또 다른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우리의 긍정적인 인식이 현지인 외교관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아니면 현지에서의 반한감정의 단초를 제공할 수 도 있다. 그 중요한 일의 시작을 이주의 도시 인천시민들이 긍정적으로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
김철수 목사•사랑마을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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