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드라마 ‘정도전’의 눈물이 좋지만은 않은 이유

드라마 ‘정도전’이 장안의 화제라 들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남자 드라마다. 정도전, 이성계, 이인임, 정몽주 등의 남자들이 야망과 절망, 회한 등을 그려낸다. 재미 있는 현상은 최근 미국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2014)와 거의 흡사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부통령, 장관 등의 각료와 국회의원의 활약을 그린다는 점에서 같은 정치 드라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역사적 현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판이하게 다른 자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드라마는 정치와 역사를 다루는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비해서, 한국은 멜로 드라마 장르적 요소가 너무 강해서 현실의 박진감이 덜 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울음의 남발이다. ‘정도전’은 거의 매회 인물들이 운다.

정도전은 이인임의 세도정치 속에서 미천한 몸으로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면서 흐느껴 운다. 그 울음이 서러움이었다면 이제 절친 정몽주와의 이견으로 인해 동지면서도 적이 되어야 하는 아픈 눈물을 흘린다.

주군 이성계의 고집불통 때문에 답답함의 눈물을 흘려야 했고, 마지막엔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스스로 권력이 되는 모순을 겪으며 공신들과의 내분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도처에 눈물 장면이 출몰하고, 시청자들은 눈물에 중독이 되어, 이제 눈물이 없으면 한 회도 견딜 수 없을 정도다.

반면 놀라운 것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거의 눈물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내용이나 국면은 흡사한데, 철저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인물들의 행동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과는 달리 미국정치가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그들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쿨’하게 전략의 실패를 반성할 뿐이다. ‘아, 내가 이런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런 시련을 당하는구나.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식이다.

어느 드라마가 현실의 정치인들을 리얼하게 그린 것일까? 과연 조선의 정치가들이 그렇게 눈물을 뿌려댔을까? 정치가가 울어서 되겠는가. 우는 것은 서민이고, 정치가는 그 순간에도 냉정하게 전략을 짜지 않았을까.

울음은 연출의 작용일 뿐이다. 왜 한국은 미국처럼 ‘쿨’하고 ‘리얼’하게 역사를 그려내지 못하고, 과장되고 정감적으로 그릴까?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한이 많아서 그런 것인가? 시청자들은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의식을 갖기 보다는 마음의 정화작용을 더 하는 편이다.

소위 치유의 효과 말이다. 한참을 흐느끼다 보면 자신의 설움이 감정이입 되어 다 풀어져 나간다. 우는 효과가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나 감정의 치유만을 위해 역사 드라마가 존재해선 안 될 것이다. 역사 의식이라는 것은 명징한 이성적 작용이며, 그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것도 인간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얼마 전 선거가 있었고, 그 이전에 세 명의 정치가가 울었다. 그중 두 명은 낙선했고, 한명은 대선과는 상관없이 다른 일로 울었지만, 좀 일찍 울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세 명 다 잘못을 인정하는 자리에서의 울음이었다. 한국 국민들은 정치가들이 울면 일단 다 용서하는 것 같다.

문득 ‘정도전’과 ‘하우스 오브 카드’가 생각이 났다. 드라마라 할 지라도 서구인들은 정치인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그릴 줄 안다. 따라서 일반인들도 정치인들의 현실을 어느 정도는 실감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시민들은 현실과 드라마를 혼동할 수 밖에 없다.

드라마와 현실이 거의 같은 지점에서 움직인다. 왜냐하면 드라마들이 눈물로서 치장하면서 현실의 냉정함을 숨기기 때문이다. 소위 역사의식, 판단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의식을 깨우는 드라마는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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