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 통산협상가의 냉정과 열정사이

필자는 민간 경제계를 대표해 FTA 협상이나 공동연구에 여러 차례 참관해 왔다. 또 과거 통상 기능이 외교통상부에 있던 시절에는 협상부서로 파견돼 직접 협상해보는 경험도 해봤다.

모든 협상가가 그렇지만 통상협상가는 정말 고통스러운 직업이다. 인적 자원이 한정되다 보니 협상가들은 여러 개의 협상을 맡기 일쑤였다.

보통 협상이 두세 달 주기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무진들의 회기간 협상까지 참여할 경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다른 협상장으로 이동해,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출장지에서 보내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아픈 상황이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상대국과의 치열한 협상으로 피곤해진 이들은 국내로 돌아오면 다시 국회와 이해당사자들과 또 다른 협상을 해야 했다. 특히 농ㆍ수ㆍ축산업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우리나라를 대표한 이상 손쉬운 협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절충점을 찾고자 머리를 짜냈고, 그렇게 얻어낸 결과이건만 국내에서는 늘 비난받기 마련이었다. 충분히 이익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여긴 이해관계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협상가들을 성토했다. 국회에서는 건실한 평가보다는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비준동의를 지연해 힘들여 만든 결과물이 일 년 이상 잠자는 경우가 빈번했다.

협상가들의 무용담을 전하며 두둔하기만 할 생각은 없다. 협상장에서 상대를 앉혀 놓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상대국과 달리 협상기간 동안 빈번하게 분과장이 바뀌면서 국내 협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국민 설명이나 TV 토론에서는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절히 설명하기보다 가르치려는 자세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에 기초한 설득을 하기보다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장밋빛 전망만 나열하는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지켜본 안의 범위에서 우리 통상협상가들은 나라를 팔아먹을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협상대표로 참가하는 공무원들은 장차 이 나라의 장차관을 맡을 수도 있는 인재들이다.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며, 어린 아이들이 기대고 버티는 부모이기도 하다. 나라의 중책을 맡게 될 이들이, 자자손손이 나라에서 살아갈 이들이 나라를 팔아먹는 협상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김연아, 박태환,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통상협상가에게도 우리 경제, 산업, 농ㆍ수ㆍ축산업을 지키며 발전시키려는 뜨거운 열정이 있다. 매 협상 전 부처 담당자들이 모여서 이러한 열정을 토해낸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이들은 그 열정을 철저히 숨긴 채 냉정하게 협상에 임한다. 이해당사자들도 무턱대고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협상가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지금은 퇴직한 고위 공무원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80:20이나 70:30의 결과를 낳는 협상은 없다.

대부분 협상결과는 50:50이고, 아주 잘해야 51:49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렇다. 비록 그 차이가 1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차이를 만들고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이들이 바로 통상협상가다. 쌀 관세화 협상과 한중 FTA 등 굵직한 협상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협상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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