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조용삼 후손 조병옥씨 “순교자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 살 것”

그것은 영광이자 감격이었다. 동시에 커다란 무게였다. 박해의 역사는 무관할 듯 했던 한양 조씨의 족보 안에서도 꿈틀됐다. 깨달음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1993년 일이다. 당시 수원교구 양평본당 총회장을 맡고 있던 조병옥씨(필립보ㆍ67)는 본당 설립 50주년 사(史)를 집필 중이었다. 지역 가톨릭 역사 정리가 작업의 취지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 씨의 계보가 됐다.

사료 정리 중 집안 어르신들의 이름이 나왔다. 족보에 명확히 기록된 이름들이었다. 이와 함께 몇 명에 불과할 것이라 여겼던 양평지역 순교자의 이름도 30명 넘게 쏟아졌다.

이에 조 씨는 넓은 연대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성당 역사 작업을 접고, ‘양근신앙 200년 사(史)’ 만들었다. 이번 교황 방문에 시복되는 124위의 순교자 중에서 3위가 조 씨의 집안 어르신이다.

고조부 격인 조숙(베드로ㆍ1787~1819) 순교자와 그의 동정부부인 권천례(데레사ㆍ1784~1819) 순교자, 집안사람으로 확신하지만 아직 족보상으로 확인되지 않은 조용삼(베드로ㆍ?~1801) 순교자까지 모두 세 분이다. 이들 모두 자신의 신앙을 순교로서 증명했다.

교구에서도 이를 인정받아 이번 시복식에 조숙ㆍ조용삼의 후손으로서 부인 노외자씨(엘리사벳ㆍ64)와 아들 태형씨(요셉)를 비롯한 자녀들과 동생 조병오씨(에프라노)씨 부부, 사촌 조병서씨(프란치스코) 등 가족 7명이 VIP로 참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시복식을 참관하게 된다. 선대가 줄줄이 시복되는 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두려움과 부담도 크다.

주변에 내색조차 못했다. 솔직히 말하기도 조심스러웠다. 위대한 선대의 후손이지만 그에 걸맞은 인품과 신앙을 가졌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가 됐다. 조 씨의 선대가 감내했던 박해는 고스란히 신앙을 추동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 시기, 선대는 순교를 준비하며 모진 고문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감각을 마비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 대목을 읽으며 순교는 하느님의 은총과 믿은 없이 불가능한 것이라 느낍니다. 새삼 부끄러워지는 부분이죠”

핍박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신앙의 맥은 조 씨 이후로도 지속되고 있다. 남은 것은 부끄럽지 않은 신앙을 자손에게 넘겨주는 일이라 생각한단다. 그것이 생의 과제이자, 이번 시복식을 통해 약속될 신앙의 증거라고 믿는다.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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