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자 위한 순례길… 세월호 유가족·위안부 할머니 만난다

오늘부터 4박5일 공식 일정… 순교성지 누비며 평화 메시지

12억 세계 가톨릭교인의 수장이자 상징적 인물인 프란치스코(Francesco) 교황이 방한했다.

제265대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고령을 이유로 사임하면서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이 됐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적 성향의 전임 교황과 달리 개방적인 행보를 보이며, ‘빈자(貧者)의 벗’으로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 교단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에 커다란 관심과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교황의 인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교황의 방한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자 취임 후 첫 아시아 국가 방한이다.

■ 첫날, ‘박 대통령과 면담 후 한국주교단 만남’

교황은 공식 일정은 전용기 탑승부터 시작한다. 현지시각으로 13일 오후 4시, 교황은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출발해 14일 오전 10시 30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수행에는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르토 파롤린 추기경과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 등 30여 명의 주교가 맡는다. 공항을 나와 교황이 처음 가는 곳은 청와대 인근 주한교황청대사관.

검소한 인품을 반영하듯 새로 들여놓은 물건 없이 방 안에 있는 침대와 옷장을 그대로 사용한다. 교황은 이 곳에서 개인 미사를 본 뒤 오후 3시 45분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다.

이어 오후 5시 30분 청와대로부터 약 12㎞ 떨어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동해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직원들을 만나 연설하는 것으로 첫날 방한 일정을 끝낸다.

■ 둘째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뒤 세월호 유가족 위로 면담 ‘눈길’

15일.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가톨릭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이날은 성모 마리아가 일생을 마친 뒤 하늘로 들어올림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신자라면 일요일이 아니라도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 대축일’이다.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청와대에서 준비한 전용헬기를 타고 대축일이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한다. 이날 미사에는 5만 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가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눈여겨볼 것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과의 면담이다. 교황은 미사가 끝난 뒤 제의를 갈아입는 제의실에서 이들과 공식 만남을 가진다.

교황은 이날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위로를 전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구체적인 면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와 관련해 교황의 관심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월호 유가족은 교황 입국부터 명동성당 미사 집전까지 전 일정을 교황의 지근거리에서 동행할 예정이다.

교황은 이어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대표 20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가진 뒤 오후 5시 30분 대회에 참여하는 6천여 명 전원을 만나기 위해 솔뫼성지를 찾는다. 이 곳은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나고 자란 곳이다.

교황은 이 곳에서 각국 청년 3명에게 ‘하느님께 받은 소명’, ‘종교 박해가 발생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선교’, ‘인생의 가치관’ 등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 셋째날, 광화문광장서 ‘124위 시복식’ 30만 명 운집 예상

가장 큰 규모의 의식이 있는 날이다. 바로 서울 광화문에서 진행되는 ‘124위 시복식’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시복식에서 교황은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1.2㎞ 구간에서 카퍼레이드를 한다. 이어 광화문광장 북쪽 끝에 설치된 제단에 올라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를 집전한다. 이날 시복식에는 가톨릭 신자와 전 세계 주교 등 최대 30만 명이 몰릴 예정이다.

시복식이 끝난 뒤 교황은 3시 30분 대표적 복지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교황은 장애인과 한국 수도자 4천500여 명,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대표를 차례로 만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그린 교황의 초상화, 손이 없어 발가락으로 접은 종이학을 교황에게 선물하고 환영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 넷째날, ‘아시아청년대회’ 참가 ‘폐막미사’ 진행

교황은 오전 11시, 아시아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을 간다. 교황 방한의 목적이기도 하다. 미사의 중심 공간인 제단은 읍성 서문 옆에 조성된다. 박해 시대의 신자들은 죽어서 나간다는 읍성 서문을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여겼다.

그 문 옆에 교황이 자리하고 청년들은 교황과 마주봄과 동시에 천국 문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된다. 교황이 미사를 드릴 제대는 23개국 청년들이 장식한 십자가를 조립해서 만든다.

23개국 청년들과 교황이 함께하는 이날 미사는 다양한 언어로 이뤄진다. 성경 독서는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신자들의 기도는 일본어, 영어, 힌디어, 한국어 등으로 낭독된다. 그 밖의 기도문은 교황은 라틴어로, 신자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바친다.

아시아청년대회의 폐회사가 될 교황의 강론은 영어로 이뤄질 계획이다. 최대한 많은 청년에게 통역 없이 메시지를 전하고자 내린 결정이다.

■ 마지막, 서울 명동성당서 미사 집전 끝으로 대미

18일 오전 9시 교황은 서울 명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7대 종단 지도자를 만난 뒤 9시 45분 방한의 마지막 미사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찾는다.

이날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등이 참석하는 미사를 집전한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명동성당 맨 앞줄에 앉아 교황의 말씀을 듣는다.

또 미사에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참석한다.

북측 신도들의 방남은 북측의 거부로 아쉽게 무산됐다. 하지만 교황이 6·25전쟁 전 북한에서 서원(誓願)해 사목활동을 하던 수녀들을 미사에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성사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교황은 미사를 마친 뒤 낮 12시45분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모두 끝낸다.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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