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질 않을 촛불 속 세월호 어린魂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으나 소리로 외치지 않고 그저 촛불을 든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촛불을 든다는 것은 소리로 외치는 것 못지않은 거대한 물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촛불 하나하나의 불씨를 행동주의 시학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적 몽상가요 사상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마지막 저작으로 『촛불의 미학』을 남기고 있는데, 촛불에서 피어올린 몽상의 내밀한 언어들이 마치 시어들처럼 살아서 철학적 문장이 되고 있더군요. 그 중에서 저는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어요.
“불꽃 속에서 공간은 움직이며, 시간은 출렁거린다. 빛이 떨면 모든 것이 떤다. 불의 생성은 모든 생성 가운데서 가장 극적이며 가장 생생한 것이 아닐까? 불에서 그것을 상상한다면 세계의 걸음은 빠르다. 그리하여 철학자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꿀 때는 모든 것을 - 폭력이나 평화까지도 -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촛불을 상상할 때마다 가장 먼저 120년 전의 동학이 떠올라요. 혹시 동학의 주문을 아시나요? 주문을 우리말로 풀면 이래요.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이여/ 내 안에 내려 지피소서,/ 그 맑고 밝은 신령이여/ 청하고 비오니/ 내 안에서 크게 지피소서./ 한 얼을 깨달아 모시니/ 무궁한 천지에 얼나 하나 마음,/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리니/ 모든 앎이 하나 마음.(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여기서 한 얼은 큰 빛이에요. 큰 빛을 품은 사람들이 동학을 일으켰죠. 저는 그 힘이 삼일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봐요. 만세의 외침도 큰 빛일 것입니다. 그렇게 밝은 외침의 빛이 모이고 모여서 광복(光復)이라는 해방의 빛이 되지 않았겠어요? 그 빛이 저는 2008년의 촛불로도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신의 ‘파도처럼 일어나’를 보면 파도의 손이 손마다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흰 포말의 손으로 든 촛불. 그의 목판화는 은은하면서도 어딘가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면 흰 파도의 손들은 마치 노동자들의 뼈마디 굵은 손들처럼 강인한데가 있어요. 아마도 아버지들의 손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강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둥글게 말아 올린 파도들의 이미지가 부드러워서 무어가를 감싸 안는 느낌도 주거든요.
중요한 것은 저 파도들의 세찬 물결 속에서도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일 거예요. 또한 ‘파도처럼 일어나’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이제 막 피어올린 촛불이요, 포말이어서 점차 거대한 촛불의 물결로 일어설 것이라는 것을 상상해 보면 저 촛불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려집니다. 작가는 저 촛불이 세월호 아이들의 영혼들이라고 하더군요.
김종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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