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농어촌공사 평택지사 양수장 관리

타들어가는 대지에 ‘생명水’… 농민들엔 ‘희망水’

70년대 끝자락에 세상의 빛을 처음 접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농업’과의 인연이 크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경제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소위 ‘농’(한국농어촌공사, 농협, 농촌진흥청 등)자기관을 전담하게 되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일 기자 체험을 하게 됐다.

고민 중이던 필자에게 “농사 짓는 어려움을 몸소 체험해 보겠냐”는 농어촌공사 직원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작정 던진 “네” 한마디로 정해진 체험. 나의 양수장 관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로 향했다. 운전석 넘어 보이는 탁 트인 전경에, ‘아직은 이곳지역 농민들을 위해 관련 기관들이 해야 할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등 대기업의 투자가 이뤄져 앞으로 산업 도시로 변모할 평택이지만, 현 시점에서 농업이 아직은 큰 역할을 해야 할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여를 달려 지사에 도착했다.

김성화 농어촌공사 노동조합 평택지부장이 반갑게 마중 나와 있었다. 김 지부장은 “쉽고 편하게 체험할 직업도 많은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오셨냐”며 웃음 짓는다.

솔직히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기자도 알 수 없는 미소로 화답했다. 수차례 전화를 걸던 김 지부장 뒤로 한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었다.

농어촌공사 평택지사내 양수장 관리를 총괄하는 김재형 과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택지사내 최대 양수장인 길음 양수장으로 향했다.

■ 작은 빗소리에도 웃음이 절로… “가뭄은 싫어요”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조금이라도 농민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저희가 존재하는 겁니다.”

수줍은 미소로 김재형 과장이 첫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도착한 길음 양수장 뒤로 광활한 평택호가 펼쳐진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마음만은 확 트인다. 상쾌한 기분으로 1일 체험 일정을 시작해본다. 김 과장은 나를 양수장 안으로 데려갔다. 본격적인 일에 앞서 양수장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란다.

길음 양수장은 먼저 3개의 간선을 지니고 있다. 연화(4대, 1000㎖)와 청북(2대, 900㎖) 그리고 숙성(2대, 900㎖). 모두 평택 관내 지명이다.

이 지역들로 평택호의 물을 끌어올려 농민들에게 물을 보내 주는 것이 길음 양수장의 주된 임무다. 물론 최근에는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돼 육체적인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몇해 전까지도 수작업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다고 김 과장은 설명한다.

그는 “양수장 관리가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육체 노동이 줄었지만 작은 빗소리에도 양수기 작동을 줄여야 할 지, 가뭄이 계속돼 양수기를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돌려야 할 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이라며 “한번의 잘못된 선택은 농민들을 큰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판단이 신중해진다”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김성화 지부장도 “비공식적인 것까지 평택지사 관내에만 90여개의 양수장이 있는데 매일매일 이들 양수장을 관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업무”라며 “양수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작은 빗소리에도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귀뜸했다.

■ 수해 걱정은 해도 한해 걱정은 하지 않는다

길음 양수장이 담당하는 면적만 평택관내 8천ha가 넘는다. 평택지사가 1만5천ha 이상의 농지를 관리하는 전국 4번째 규모의 지사라고 볼 때 이 곳 양수장의 관리 면적은 광활하기 그지 없다.

김재형 과장은 “길음 양수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농업을 강조하던 197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양수장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공법을 도입한 양수장”이라며 “보통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지만 평택호에서 끌어올리는 물은 낮은 곳에서 높은 지역으로 물을 밀고 나가는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 어느 양수장보다 물 공급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광대한 관리 면적을 자랑하는 길음 양수장은 이스라엘 공법을 통해 양수기의 힘으로, 화성과 용인 지역 일부까지 물을 공급하게 되는데 길게는 3일 정도 평택호의 물이 흘러가야 하는 특성으로, 계획적인 물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설명이 길었다. 연화 간선으로 통하는 양수장의 통문을 열어줄 시간이다. 자동 시스템 대신 수작업을 택했다. 엄청난 힘으로 돌려도 눈금은 몇 mm 정도만 올라온다. 정확한 물 배급을 위해서란다. 지금은 모두 자동 시스템으로 통문을 열지만 얼마전까지는 수작업으로 이 모든 일들을 해야 했다. 농민들이 제대로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말없이 지원하는 직원들의 노고가 새삼 고마워진다.

김성화 지부장은 “평택관내는 풍부한 평택호의 수량과 잘 발달된 양수장을 갖추고 있어 어찌보면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풍요로운 지역일 수 있다”면서 “농업을 지원하는 공사의 직원으로서 비가 많이 오는 수해는 걱정해도 가뭄이 오는 한해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평택지사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는 농민의 자식… 어느새 정겨워지는 그들만의 행복

아침 일찍부터 길음 양수장을 포함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양수장을 돌면서 양수기의 상태와 물의 수위, 통문을 점검하다보니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기자의 마음을 알았는 지 김성화 지부장이 손수 농사를 지으며 장사를 하는 유명한 식당으로 안내했다.

숙성리에 위치한 탓에 평택호의 물을 공급 받아 농사를 지어서 인지 우리를 맞이하는 사장님의 인사가 정겹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라고 툭 던지는 말조차도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대화같다. 처음 가져다주는 음식 외에는 모두 손수 가져다 먹으란다.

김재형 과장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농민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식구나 친구들에게 농사꾼 같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며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고 놀리는 말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만큼 정겨운 표현이 없다”고 흐뭇해했다.

김성화 지부장도 “민원이 있다고 찾아오는 이웃주민에게 작업복 차림에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서로 서운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게 농촌의 생활이자 인심”이라면서 “농업이 사양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농업이 있어 대한민국의 초석이 세워졌고, 그들이 있어 우리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평택지사 직원들의 모습에서 작지만 뿌리 깊은 희망을 보았다. 그건 다름아닌 농업과 농민들의 사랑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합쳐져 아직은 대한민국 농업이 죽지 않았다는 희망. 오늘도 농민들의 좀 더 안정된 농사 일을 도와주기 취해 운전대를 놓지 않는 직원들이 있어 평택의 농촌은 즐거운 것이 아닐까. 이들과 함께 한 하루가 보람찬 것도 이런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규태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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