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소설가 이기호(42)가 두 번째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刊)을 들고 돌아왔다. 2009년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이후 딱 6년 만에 낸 장편이다. 이 소설은 얼떨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돼 수배자 신세가 되고 만 ‘나복만’의 삶을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광기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과 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사과는 잘해요’에 이은 그의 ‘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사과는 잘해요’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죄의식을 다뤘다면, ‘차남들의 세계사’는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군사정권 아래 뜻하지 않게 수배당한 인물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야기를 통해 개인과 국가 사이의 죄와 벌이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기호 작가는 이 작품을 2009년 봄에 쓰기 시작해서 올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꼬박 6년이 걸린 셈. 서울, 담양, 무주, 광주, 원주, 우즈베키스탄 등을 전전하며 썼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긴 시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읽힌다.
작가는 언제나, ‘시봉’이로 대표되는, 어딘가 좀 모자라고 어리숙해 보이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애정과 눈길을 보내는 글을 써 왔다. 그 어수룩함이 만들어 낸 우여곡절들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애잔하게 펼쳐진다. 역사에는 언제나 1등의 이야기만 기록된다. 각자의 일기장에나 기록될 작고 소심한 2등들의 이야기, 그 ‘차남들’의 이야기를 그는 이번에 아주 작정하고 썼다. 그 어떤 것도 이야기가 될 수 없을 법한 비루한 존재들의 삶에서 그는 기어코 이야기를 건져 올리고 만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늘진 곳을 밝게 비춘다.
삶에 대한 통찰, 재기 넘치는 문체, 선명한 주제의식, 매력적인 캐릭터, 유머와 익살, 애잔한 페이소스까지, 읽는 재미와 감동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안겨 주는 ‘차남들의 세계사’는 이기호 문학의 모든 것을 담아낸 ‘이기호의 세계사’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추천사를 통해 “무거운 소재 앞에서도 ‘이야기꾼’의 어조와 호흡을 절묘하게 운용하면서 시종 ‘희비극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기호 소설의 특징”이라며 “이기호의 소설에서는 많이 웃은 만큼 결국 더 아파지기 때문에 희극조차 이미 비극의 한 부분이다. 쉽게 읽히지만 빨리 덮기 어려운, 깊이 상처입은 사람의 쓸쓸한 농담 같은 소설”이라고 밝혔다.
이기호는 비극적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게 웃어야(웃겨야) 한다는 것을 고집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 소설을 끝까지 웃으면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두 번째 장편소설도 그 웃음은 유효하다. 또 씁쓸함도 유효하다.
한편, 이기호 작가가 1999년 단편소설 ‘버니’를 현대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한 지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까지 그는 그사이 명실상부 이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값 1만3천원
강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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