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교황 있는 세월호 - 교황 없는 세월호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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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 “좌파 새끼들이 수도 서울을 아예 점령했구나”.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줄 안다. 이 말이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인간들, 세월호 유족충”. 뮤지컬 배우 이산의 글이다. 글과 함께 사진도 올렸는데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 현장이다. 폼 나게 선글라스까지 끼고 찾아가서 찍었다.

또 다른 배우가 김영오씨의 단식에 ‘황제단식’이라는 조롱을 달았다. 이보다 더한 악담들도 SNS에 수두룩하다. 참혹해서 옮길 수 없을 뿐이다. 이러는 사이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단식을 하는 유민 아빠는 딸을 버렸던 패륜 아빠로, 농성하는 유족들은 자식 죽음을 대가로 한 몫 잡으려는 패륜 집단으로 몰렸다. 이제 세월호의 슬픔을 입 밖에 꺼내기도 멈칫거려질 정도다. 교황이 없는 한국의 모습이다.

열흘 전 한국은 달랐다. ‘비바 파파’(교황 만세)가 연호되던 광화문은 축복의 장이었다. 입장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노란색 무리에게 다가갔다. 단식중이던 유민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건네 받은 김씨의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 소중히 넣었다. 다음날 교황은 ‘승현 아빠’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다. 십자가를 지고 900㎞ 걸어온 이씨였다. 교황은 자신과 같은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줬다.

언론은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썼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이라고 썼다. 힘든 자들의 반려자 교황이라고 썼다.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의 존칭은 다 동원했을 것이다. 그 사랑의 무리 속에 연예인들도 있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건강하시길 바란다”(배우 채시라). “오늘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었다. (교황께서) 노래를 통해서 앞으로 많은 분들께 용기와 희망을 전하라 하셨다”(가수 보아). 교황이 있는 한국의 모습이었다.

데자뷰인가. 2002 월드컵. 마지막 한국 경기는 4강전이었다. 바로 다음날 광화문 광장을 찾은 외신 기자가 이런 기사를 타전했다. “어제까지 붉은 인파로 가득 찼던 이곳은 하루 만에 소름끼치도록(Terrible) 조용해졌다”. 그 기자가 열흘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을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교황 있을 때 세월호 유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광화문이 교황이 떠난 뒤 소름끼치도록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

교황도 인간이다. 그가 해준 건 별로 없다. 죽은 아이들을 살려낸 신력(神力)도, 유족에게 나눠준 재물(財物)도 없었다. 그저 손잡아주고 눈 마주쳐주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거기서 위로받았다. ‘승현 아빠’는 그날 이후 무겁던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성이 서로를 통하게 한 것이다. 교황도 이렇게 강조하며 떠났다.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대통령도 인간이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특별법은 국회가 만든다. 특별 검사도 정치권이 뽑는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며칠째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7일. 대통령은 아직 선미(船尾)가 괴물처럼 드러나 있는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위로받았다. 국민 59%도 대통령을 지지했다(갤럽 조사). 그때와 달라진건 없다. 만나야 한다.

‘왕 교수’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세월호 때문에 밀렸던 봄 축제들이 전부 가을로 넘어왔어요. 연예인 섭외가 비상입니다. 우리 학교도 가수 스케줄에 맞춰 개학과 동시에 하게 됐습니다. 개강하고 축제하고 추석 연휴죠”. 왕 교수네 학교뿐만 아니다. 봄 축제가 겹치면서 올가을 대학가는 축제가 홍수를 이루게 됐다. 덩달아 연예인의 몸값도 뛰고 있다. 넉 달 전에 ‘밥줄 끊겼다’던 연예인들의 숨통이 그렇게 확 트이고 있다.

모든 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가수도 돌아왔고, 무대 업자도 돌아왔고, 조명 업자도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게 있다. 그때 거기서 죽어간 아이들이다. 그 애들이 부모의 가슴에 남기고 간 천붕(天崩)의 상처다. 어쩌자고 그 불쌍한 애들을 욕되게 하나. 어쩌자고 이 불쌍한 부모들을 힘들게 하나. SNS 곳곳을 튀어다니는 이상한 물질, 이건 분명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흘려놓은 DNA 찌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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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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