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어쩔 수 없이 검사를 그만두게 되었던 일, 2008년 운명처럼 수원 권선구 국회의원이 된 일, 2012년 아무런 이유없이 공천을 받지 못하고 운명처럼 무소속으로 선거에 뛰어든 일, 2014년 재선거로 다시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일 등 많은 장면들이 지나갑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함께 한다면 세상에는 나쁜 일이라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권선구는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비행장이 있는 곳이라 비행장 이전 문제를 좀 더 알고자 18대 국회의원 때 야간에 국방대학원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국방위원회를 선택했습니다.
검사출신이지만 법사위가 아닌 국방위를 선택한 이유는 권선의 미래가 수원비행장의 향방에 달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수원 비행장으로 인한 소음피해는 그 배상액이 점점 커져가고 있고 결국에는 국방비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적으로도 수원비행장 이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핵심은 이전할 부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18대 국회에서 최초로 수원비행장 이전 부지를 찾기 위한 국방부 민간 연구용역을 이루어냈습니다.
30년 숙원, 수원비상활주로 고도제한, 해제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 냈습니다.
광교-호매실 복선전철, 신분당선 연장선 예산 확보, 권선구 노인회 예산 확보, 호매실 열병합발전소 이전, 구운역 설치하기로 마음먹고 국토해양부 장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공청회를 개최해서 수인선 지하화쪽으로 결론을 이끌어 냈습니다. 수원-서울역간 버스노선 확보, 고색고등학교를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오현초등학교에 체육관을 건립하고 권선동에 청소년 수련관을 만들고 당수동 파출소를 만들었습니다.
일월천에 목교를 설치하고 서호천에 산책로를 조성하고 고색동 대로를 확장하는 등 지역현안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습니다.
우리 권선구는 각 동마다 특유의 민원과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빨리 찾아내서 해결방안을 만들어 드리는 것,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해결할 자신이 있습니다. 검사로 있을 때부터 해결사 정미경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던 어려운 현실을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공군사관학교를 중퇴했던 육군 대위였고, 인간적으로 제가 아는 한 가장 가엾은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고엽제 후유증으로, 알콜 중독으로, 암으로 결국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희망이라고 잡고 있었던 것은 딸인 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딸을 사랑하셨습니다.
“미경아 공부를 열심히 해라. 남자들이 하는 공부를 해라. 판검사가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 땅에서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큰소리치는 것을 지금부터 훈련해야 된다고 야구장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세상에 마음 둘 곳 없었던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되는 것 하나 없었던 아버지에게 저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제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살고 있는 우리 지역에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조국 대한민국, 우리나라에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지역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 더 나아가 마음 편히 자식 키울 나라를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만들고 싶습니다.
정미경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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