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우리에겐 자랑스런 國軍 43만이 있소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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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섯번째 국군의 날에-

담배 15갑이 월 할당량이다. 보름쯤 지나면 동난다. 변기통에 떨어진 ‘장초’도 말려서 피운다. 단것은 먹어도 먹어도 당긴다. 사회에서는 먹지 않던 빵을 수시로 사 먹는다. 맛동산과 코코넛 비스킷이 준비될 때도 있다. 분대 단위 회식이 있는 날이다. 그 사이 PX(부대 매점) 외상 장부가 늘어 간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PX 병’이 내무반을 찾는다. ‘80년 상병’이 그렇게 쓰던 봉급이 3천400원이다. 그 봉급이 2014년에 13만4천600원이다. 40배다.

찌는 듯한 여름날 훈련이 끝난다. ‘80년 상병’ 에겐 변변한 공간이 없다. 내무반 구석 총기 거치대 옆이 자리다. TV 앞 침상에는 말련 병장이 눕는다. 신참 병장들이 그 뒤로 조금 불편하게 앉아 있다. 일병과 이병의 자리는 아예 없다. 내무반 밖 처마 밑이 그들의 공간이다. 취침나팔이 불 때까지 내무반은 그렇게 병장과 상병들 차지다. 그 군대에 2003년 현대식 막사가 들어섰다. 개인 침대까지 들어갔다. 2.3㎡이던 1인당 면적이 6.3㎡로 커졌다.

책(冊)은 사치다. 읽을 시간도 없지만 읽을 책도 없다. 진중도서라야 ‘월간 샘터’가 전부다. 그나마 언제적 발간인지 알 수가 없다. 80년 군대에서 월간지는 1년이 지나도 ‘다음 달’이 오지 않는 ‘연간지’다. 샘터 이외 외부 책은 모조리 불온서적이다. ‘80년 상병’에게서 발견된 박범신의 소설이 소대 전체를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그 시절 책은 군기를 해이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랬던 군대에 도서관이 2014년 현재 1천662곳이다. 책이 480만권이다.

놀잇감이 있을 리 없다. 시멘트로 만든 역기(力器)는 고참 차지다. 기웃거렸다간 ‘힘이 남아 돈다’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신 해야 할 게 분대 대항 족구 시합이다. 그나마 담배를 내기로 건 고참들의 놀이거리다. 내무반 구석에 기타는 상급부대 과시용이다. 6개 줄이 성할 리 없다. 남은 줄도 벌겋게 녹슬었다. ‘80년 상병’에게 휴식은 그렇게 놀잇감 없는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 군대에 보급된 PC가 2014년 현재 4만8천617대다. 군인 9명당 1대꼴이다.

소름 끼치는 교육도 있다. 이상한 차림새의 외부 강사가 등장한다. 군복을 입었는데 허리띠가 없다. 군화를 신었는데 신발끈이 없다. 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 병사다. 부대원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강연이 끝나자 헌병에 이끌려 호송차에 실린다. 끔찍한 사진들도 전시된다. 사고 또는 자살자들의 모습이다. 교육의 목적은 간단하다. ‘죽지도 말고 죽이지도 마라’. 그랬던 80년, 군에서 사망한 사고자가 970명이다. 2014년 6월까지 55명이다.

그래도 10월1일은 좋다. 아침 식단에 고깃국이 등장한다. 3개들이 팥빵도 나온다. 훈련도 없다. 모처럼 TV 앞 자리가 모두에게 개방된다. 서울 시청을 지나는 시가행진이 방송된다. 고층 건물에서 뿌려지는 색종이가 거리를 화려하게 덮는다. 여성들이 뛰어들어 장병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준다. 내무반이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얼굴도 모르는 오빠에게’로 시작하는 위문편지가 배달되는 것도 이때쯤이다. ‘80년 상병’이 군인 됐음을 뿌듯해 한 날이다.

군(軍)은 좋아졌다. 월급도 올랐고, 내무반도 좋아졌고, 책도 넘쳐나고, 사망 사고도 줄었다. ‘80년 상병’ 눈에는 개혁(改革)이 아니라 개벽(開闢)이다. 그런데도 정반대로 가는 게 있다. 군을 보는 민(民)의 시각이다. 부하 죽이는 폭력집단으로 몰고 간다. 하급자 성추행하는 변태집단으로 묘사한다. 툭하면 뚫리는 엉성한 보초집단으로 쓰고 있다. 시민 단체가 선창(先唱)하고, 언론과 정치가 복창(復唱)한다. 국가에 도움 안 될 이런 선동을 경쟁하듯 하고 있다.

국군의 날도 예전의 그날이 아니다. 특식(特食)은 여전하다. 하지만 ‘80년 상병’은 받았고 ‘2014년 상병’은 못 받는 게 있다. 국민들이 차려주는 생일상이다. 시가행진도 없고 꽃다발도 사라졌다. 공휴일도 아니니 기억해주는 이도 적다. 군사 문화 잔재라며 1991년 문민정부가 없앴다. 겹치기 공휴일까지 챙겨주는 나라지만-대체 공휴일제-국군의 날은 챙기지 않는다. 땅을, 바다를, 하늘을 지켜주는 국군에게 내놓는 생일상이 이렇듯 초라하다.

417년 전, 이순신은 열두 척의 배를 가지고 싸웠다. 그와 수병들이 벌이는 영웅담에 1천800만 국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어떤 배우의 연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2014년 국군의 모습에는 박수가 없다. 잘린 손가락 대신 다른 손으로 사격하며 연평을 지킨 군인, 불붙은 철모를 쓰고 포탄을 장전하며 전차를 지키던 군인, 수원 시민 다칠까 봐 조종관을 붙들고 산화한 군인…. 1597년의 ‘12척 배’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2014년의 ‘43만 국군’의 모습이다. 그런데 모두들 잊고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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