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희망의 사다리

오늘 오후 5시, 제56회 사법시험의 2차 합격자가 발표된다. 22년 전 나 역시 그 날만을 기다리며 하얗게 지새웠던 밤을 생각하면 고시생과 부모님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가 꼭 들리는 것만 같다.

얼마 전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될 사법시험을 현행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와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불도저를 몰던 경기도청 기능직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러닝셔츠 차림으로 팔달산을 뛰어다닌 수원의 평범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며 놀던 그 아이가 검사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한 자를 배신하지 않았던 공교육, 그리고 사법시험 제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지난 60여 년간 법조인 선발제도로 유지되어온 사법시험은 누구나 노력하면 빈부나 환경·나이·조건 등에 좌우되지 않고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자격시험이다. 시험 결과에 대한 승복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만큼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보장되고 있다.

3년 뒤 사법시험이 폐지되면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다양한 전문분야와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지난 5년간 여러 부작용들이 드러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가장 큰 부작용은 서민층의 법조계 진출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전국 평균 1천500만원이며 적게는 1천만원, 많게는 2천만원에 이른다. 기존 사법시험 제도가 평등을 추구하는 제도라면 로스쿨 제도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기반한다. 변호사가 되면 많은 수익을 올릴 것이니 미래의 수익자들이 미리 비싼 학비를 부담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미래에 큰 수익을 내기엔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법조인 배출 숫자가 한국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아졌다. 한국과 미국의 ‘인구 당 변호사 수’를 비교하면서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각국의 법률 시장 규모를 염두에 두지 않은 데서 오는 통계의 함정이다.

게다가 군대를 가야 하는 남자의 경우, 로스쿨까지 졸업하려면 사회진출 시기가 너무 늦어지게 된다. 4년제 대학에 입학해 군대 2년, 로스쿨 3년, 수습 변호사 6개월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서른을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까지 드는 시간이 너무 길다.

또 현재는 변호사시험 성적을 누구에게도 비공개로 함에 따라 졸업 후 판·검사, 로펌 진출 과정에서도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폐단이 존재한다. 능력을 평가할 객관적 지표가 없다보니 선발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판사나 검사 등 공직으로의 진출 과정이나 대형 로펌의 선발 과정에서 변호사 개인의 법률적 지식이나 소양보다는 다른 그 무엇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유력가 자녀들이 특혜를 받는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회적 위화감이 커져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법조인 선발에서부터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면, 공정과 신뢰라는 사회정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사법시험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누구나 노력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사다리’,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하는 이유다.

돈이 없다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사회라면 희망이 있을까. 반드시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통과되어 예전의 나와 같은 수많은 청년들의 꿈을 지켜줄 수 있었으면 한다.

 

/김용남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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