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소년이 있다. 한 소년은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다. 고시원에서 홀로 살던 이 소년은 형편상 축구부를 그만 두게 되었다. 소년은 편의점에서 14시간씩 일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축구공으로 다져진 근육 곳곳엔 문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치킨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두 번의 사고를 냈다. 이후 소년범이 됐고 보호처분을 받게 됐다.
다른 소년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거리에 홀로 나서게 되었다. 고교를 자퇴한 소년의 손엔 책 대신 편의점 바코드가 들렸다. 밤엔 전기도, 가스도 끊긴 단칸방에서 담배로 허기와 외로움을 달랬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쓰러진 소년은 뇌출혈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된다. 소년은 7시간의 대수술을 받았고 의사는 소년의 하반신 마비와 언어장애를 우려했다.
어느 편의점에서, 거리에서 보았을 어린 친구들이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속하지 못한 이 소년들을 기다린 것은 차가운 현실과 외로움이었다. 두 소년을 만났다. 당초 좌절만 남았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희망이, 볼에는 소년특유의 쑥스러움이 묻어났다.
축구를 했던 소년은 다시 축구부에 들어갔다. 비록 정식 고교 축구부도 아니고, 등록된 선수도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이 있는 축구팀에서 다시 뛰고 있다. 손과 발에 가득한 문신 위로 땀이 흘렀다. 서먹했던 아버지와도 전화통화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소년은 열흘 만에 깨어나 “엄마”라고 불렀다. 가족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고, 동네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산책을 나갈 수도 있게 됐다. 소년은 이제 수술로 머리카락이 다 빠져 완벽한 외모에 흠이 됐다고 너스레를 떤다.
누군가에게는 ‘문제아’, ‘낙오자’로 보였을 이들이 다시 공을 차고 걷게 한 것은 국가의 딱딱한 제도가 아닌 공동체의 따스함이었다. 축구를 하던 소년은 소년원이 아닌 법원에서 위탁한 공동생활가정의 보살핌과 훈육을 받았다. 대리부모는 소년이 뛸 수 있는 축구팀을 백방으로 찾았고, 지역의 한 축구팀은 그런 소년에게 축구화를 신게 해주었다.
뇌출혈 수술을 받은 소년이 자랐던 지역교회는 그의 사연을 나누며 도울 방안을 고민했다. 또래 학생들은 정성스레 만든 장신구로 바자회를 열었고, 작은 음악회를 통해 응원의 노래를 했다. 포털에는 소년을 위한 모금창구가 개설됐다.
물론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정식 축구선수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이 있다. 공동가정생활도 더 익숙해져야 하고, 학업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전신에 가득한 문신을 지우기 위해서는 쓰린 고통도 참아내야 한다. 다른 소년의 병원비 숫자는 아직도 길기만 하고, 가족들은 언제 다시 흩어져 살아야 할지 모른다.
궤도를 벗어나 사각지대로 내몰렸던 소년들이 겨우 함께 걷고 뛰려한다. 이 기회를 또 놓친다면 소년들은 다시 축구화를 벗고 책을 놓아야 할지 모른다. 공동체가 잡은 희망의 끈을 국가는 단단하게 이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공중화장실의 3남매 사건, 마지막 집세를 두고 떠난 송파 세모녀 사건이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을지 모른다.
치열하게 진행 중인 국정감사가 끝나면 곧바로 예산전쟁이 이어진다. 정부가 손 놓은 복지예산 내역을 보면 두 소년이 떠올라 얼음물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그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몸짓마저 외면하는 국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송호창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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