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다학제 통합 진료’
“암이 재발할까요?” “우리가 그것 때문에 모였습니다.(대장항문외과 서광욱 교수).
조직 검사 결과 직장암 2기로 다행입니다.(병리과 김영배 교수) 수술 전방사선 치료도 잘 받으시고 효과도 좋았습니다(방사선종양학과 전미선 교수).
앞으로 암 전이를 예방하기위해 두차례 정도 항암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종양혈액내과 안미선 교수) 수면 장애와 불안 증세가 있어서 정신건강상담을 병행하면 암 치료에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정신건강의학과 김남희 교수)”
‘다학제 통합 진료’가 진행된 아주대학교병원. 최근암 수술을 받은 최은식(가명ㆍ55세)씨의 짧은 질문은 간절했다.
그 마음을 위로하듯, 질문 하나에 5명의료진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 6월 직장암(Rectal cancer) 진단을 받은 최씨는 두 달 여간 화학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9월 26일 수술(저위전방절제술 회장루조성술)했다.
퇴원 후 처음으로 찾은 병원에서 한 방에 모인 5명의 의사들에게 진단 결과와향후 치료법을 들은 최씨는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의사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질문에 바로 대답해주시니 편리하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추가 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서요.”
환자와 여러명의 의사가 한 방에서 동시에, ‘다학제 통합진료’
지난 16일 오후 12시 15분 다학제 통합진료실에 김현철(가명ㆍ61)씨가 아내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치질 치료 중 직장암이 발견돼 지난 7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 9월 30일에 수술했다. 이후 추가 치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다학제 통합진료를 신청했다.
방에는 5명의 교수가 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광욱 대장항문외과 의사, 전미선 방사선종양학과 전미선 의사, 안미선 종양혈액내과 의사, 김영배 병리과 의사, 김남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이다. 이들은 환자가 들어오기 전 해당 검사 영상 기록을 함께 보고 치료 및 수술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김씨가 앉자 주치의 서 교수는 다학제 통합진료에 대해 설명하며 “의사들에게 맘껏 질문하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검사 기록을 분석 판단해 주치의에게 전달해 온” 병리과 김 교수가 영상을 짚어가며 암 조직의 크기와 전이 상태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수술 예후가 좋다’는 의료진의 이구동성에 김씨와 보호자는 “천만다행이다”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서 교수가 함께 기뻐하며 환자를 대신해 종양혈액내과 안 교수와 방사선종양학과 전 교수에게 향후 치료 일정을 질문했다.
이에 안 교수는 “조직검사 결과 추가 화학요법을 한 달에 한 주씩 3번 더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고, 전 교수는 “방사선 치료는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다만 의사들은 “환자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는데 입을 모으며 회복 시간을 가진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보호자가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체중도 너무 줄어서 걱정이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각 의사들이 소견을 밝히고, 정신건강의학과 김 교수가 마음건강클리닉 상담을 권했다.
김 교수는 “암 환자들은 신체 변화와 체력 약화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연구 사례를 보면 스트레스를 줄이면 면역기능이 강화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중증 환자들의 정신과 상담 역시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료의 질↑ 환자 만족도↑… 의료 환경 고려해야
다학제 통합진료는 환자 1명을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의견을 나누며 치료계획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물론 기존에도 각기 다른 진료과의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을 함께 논의해왔다.
의료진이 문서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협의진료나 함께 모여 토론하는 컨퍼런스 등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여러명의 의사가 ‘한 방에서 환자를 대면하고 동시에’ 진료하는 것이다.
장점은 분명하다.
일단 진료의 질이 좋아진다. 4~5명의 의료진이 한 명의 환자를 대면한 가운데 의견을 나누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의료진으로서는 혼자 진단할 때 생길 수 있는 실수와 판단착오를 예방할 수 있다. 세분화된 전문 영역의 의사들이 함께 치료 계획을 세움으로써 정확한 진단과 병기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계획할 수 있다.
환자의 만족도도 훨씬 높아진다. 수술과 치료법에 대한 소소한 궁금증까지 한 자리에서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으니 당연한 효과다.
다학제 통합진료를 받지 않을 경우 암 환자는 각 과별로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이동하는 거리, 긴 대기 시간 등 환자로서는 번거로운 진료 환경이었다. 게다가 의사마다 얘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불안에 떨기 십상이다. 짧고 어려운 의사 면담에 쉽게 질문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다학제 통합진료를 하면 여러 의료진이 한 자리에서 오로지 한 환자를 위해 이야기하고 진단 내린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에 대해 전문적이고 특별하며 집중적인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의료진과 향후 치료에 대해 믿고 확신하게 된다.
게다가 진료비도 저렴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부터 상급종합병원의 다학제 진료에 대한 진료비(수가)를 신설했기 때문이다.
의사 4명의 다학제 통합진료를 받으면 11만3천210원의 진료수가 중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5천600원에 불과하다. 5명 이상일 경우 14만1천510원 중 7천원만 내면 된다. 단, 처음 암이 발생했을 때 환자당 3회 이내 재발 암의 경우 소견서를 참조해 2회 이내만 인정된다. 이처럼 저렴한 비용 대비 효과와 만족도가 높아 환자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4~5명의 의사들이 한 번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의료 환경과 저평가된 수가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아주대병원의 의사들도 외래환자를 진료하다가 점심시간(12시)에 식사도 거른 채 부랴부랴 모여 다학제 통합 진료에 임했다.
병원 관계자는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수가가 낮아 일반화되면 경영 압박도 예상된다”며 “하지만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자의 만족도가 좋아서 지속적으로 확대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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