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쫄병이 데스크일 때 이랬다. 제보 전화를 받은 건 朴 기자다. 두어 시간 뒤 돌아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여관 지하 주차장에 있는 두 대의 승용차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지방 의원의 차다. 불륜 관계였던 남자가 의원의 또 다른 불륜에 격분해 차를 막고 제보한 거였다. 그때 편집국 의견은 이랬다. “성인 잡지도 아니고…보도하지 맙시다” 결국 그날 이야기는 영원히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그 데스크가 쫄병일 때도 그랬다. ‘사쓰 마와리’(さつまわりㆍ察回ㆍ경찰서를 돌다) 기자가 들춰보는 사건의 태반은 교통사고와 성범죄다. 강간(强姦), 윤간(輪姦), 간통(姦通)…. 쫄병의 눈에는 하나하나가 재미(?)였다. 기사와 재미를 구분 못 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원고는 조용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어 선배들의 타이름이 돌아왔다. “야! 너 ○○○서울-70년대 성인 잡지- 기자냐? 이런 건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땐 그랬다. “허리 아랫도리 얘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법(法)이 있는 것도, 규칙(規則)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훨씬 전부터 언론을 지배해온 불문율이었다. 잡지(雜誌)와 일간지(日刊紙)를 구분 짓는 ‘격(格)’이기도 했다. 그러던 게 달라졌다. 마구 쓰기 시작한다.
‘신정아 사건’이 그렇다. 시작은 학력논란이었다. 미국 유명 대학교 졸업장을 위조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애초에 언론이 가려던 종착점은 따로 있었다. 섹스스캔들이라는 ‘허리 아랫도리’ 얘기었다. ‘정권 실세’라는 일반 명사로 시작된 보도가 점차 고유명사로 좁혀졌다. 결국, 청와대 정책실장의 연애사(戀愛事)에 이르고서야 멈췄다. 신씨의 나체 사진-사실은 조작이었던-이 일간지에 실린 충격도 그때의 일이다.
그 즈음부터 보도의 벽이 무너졌다. 벽은커녕 되레 성(性)이 최고의 취재 메뉴로 등장했다. 잘나가던 3선 국회의원이 출당됐다. 검찰의 최고 수장이 무너졌다. 현직 검사장이 낯부끄러운 전과자로 추락했다. 물론 성추행은 범죄고 축첩은 부도덕이다. 문제는 이를 보도해 배달되는 식탁(食卓) 위의 단어들이다. ‘가슴을 거칠게’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자위행위용 베이비로션’…. 성인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들 아닌가.
이건 ‘알권리’가 아니다. 쿠퍼(Kent Cooper)가 주창했던 알권리는 이게 아니다. 강연과 저서(Right to Knowㆍ1956년 著)로 남아 있는 그의 주장에는 절박했던 시대정신이 있다.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 모든 언론이 침묵 당했다. 국익(國益)을 앞세운 국가의 폭력이었다. AP통신의 전무(專務)였던 그가 맞섰던 대상은 바로 그런 국가와 권력이었다. 세계 어느 헌법도 정의하지 못했던 정신을 그가 선창(先唱)한 것이다.
알 권리라니…. 차라리 선정성에 올라탄 보도라고 시인하는 게 낫다. ‘성추행’보다 ‘가슴을 거칠게’가, ‘혼외 관계’보다 ‘침대에 함께 누워’가, ‘음란 행위’보다는 ‘베이비로션’이 더 자극적이라 택했다고 시인하는 게 낫다. 성도착증(Paraphiliaㆍ나체 또는 성행위에 관련된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이와 관련된 환상에 사로잡히는 질환)을 활용하는 판매 기술이라고 시인하는 게 낫다. ‘알 권리’가 아니라 ‘훔쳐보기 권리’다.
정윤회 사건의 흐름도 그렇다. 저마다 표현에서는 점잔을 뺀다. ‘국정 농단 사건’ ‘권력 암투 사건’ ‘비선 조직 사건’…. 하지만 이런 표현 뒤에 숨겨진 기사 제목을 모르는 이는 없다. 결국 ‘대통령의 침실 엿보기’고 ‘대통령의 사생활 훔쳐 보기’다. 방점을 그곳에 찍고도 핵심이 없으니 이렇게 빙빙 도는 것이다. 선정성과 권력을 이렇게 버무리는 사이 국정은 흔들리고 있다. 연금 개혁, 규제 혁파가 다 묻히고 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선배들이 옳았다. 선정성과 열독률은 다른 거였다. 알권리와 훔쳐볼 권리는 구분되는 거였다. 적어도 그때라면 ‘세월호 7시간’이라 써놓고 연애담에 군불을 지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정 농단’이라 써넣고 사생활을 추론하진 않았을 것이다. 품격도 찾을 수 없고 진실도 확인시키지 못하는 기사가 도배되는 요사이 대한민국 언론. ‘옐로우 저널리즘’이란 말도 아깝다. 차라리 ‘섹스 저널리즘’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차라리 ‘섹스 저널리즘’ 이다]
김종구 논설실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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