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두 연주회

지난 11월,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서울의 같은 콘서트홀에서 사흘 간격을 두고 각각 독일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명문 방송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되는 흔치않은 일이 벌어졌다.

같은 작품일지라도, 음악을 해석하고 만들어 나가는 지휘자와 그의 악기인 오케스트라의 연주 성능 및 사운드의 특징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 이벤트가 되었으므로 음악인들과 음악애호가들의 관심이 자연히 집중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를 이어, 프로코피에프와 함께 러시아 음악의 정통성을 이어갔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소련 사회를 공포로 짓눌렀던 숙청 분위기 속에서 스탈린 공산정권의 억압으로부터 어지간히 시달림을 받으면서 심각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위기를 극복하고 작곡가로서의 명예와 입지를 회복하고자 고군분투 했던 그는, 그 결과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답변’이라는 멘트와 함께 그의 생애 최고의 걸작 교향곡 5번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는 체제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스탈린 압제에 은밀히 반항하는 이중적 면모가 담겨 있는 만큼, 예술가로서의 내면적 갈등과 작곡가 자신의 인간적 고민이 깊게 서려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오늘날 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빈번히 연주되고 인기도 가장 많은 곡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공산권의 소련 작곡가 작품 연주가 금지됐던 시절, 1978년 내한했던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당시 공연관계자의 강력한 프로그램 변경 요청을 무시하고 결연히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한 마리스 얀손스는, 러시아 지휘계의 거장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를 사사한 후, 빈 음악원의 명교수 한스 슈바로프스키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카라얀의 문하에서 서양 오케스트라 지휘의 계보와 전통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현존하는 지휘계 최고의 명장이다.

특유의 집중력과 열정을 쏟아내는 그는, 이번 연주에서 저음부 베이스 악기를 무대 중앙의 오른편에 배치하는 등 서구의 전통적인 토스카니니식 악기 배치를 하였고, 정교하고 세련된 독일 사운드를 쌓아갔다.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에 42살의 나이로 상임지휘자에 임명된 이후 40여 년간 뚝심으로 이끌어 온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는, 반세기 넘게 극심한 변화와 혼란의 시대를 겪어 오면서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전통적 사운드를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는 러시아의 마지막 거장이다.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인 그는, 얀손스와는 다르게 므라빈스키식의 전통에 따라 저음부 베이스 악기들을 무대 중앙과 왼쪽 뒤편에 배치하였고, 다소 투박하고 거친 러시아 사운드가 중후하면서도 화장기 없는 러시아의 향토적 음악을 만들어냈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콘서트홀의 음향 조건에서 하나의 음악을, 서로 다른 지휘자의 해석, 서로 다른 사운드 특성과 성능을 갖춘 오케스트라의 실연으로 비교하여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않다.

내심 이 흥미로운 대결의 승자로 러시아 본토의 노장 페도세예프의 손을 슬쩍 들어주면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섬세한 맛의 고급 와인 같은 독일 사운드보다는, 러시아 보드카와 같은 사운드가 보다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임형균 톤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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