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 쯤 일요일 오전이었다. 집 근처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티켓을 주문했었다. 9시 전이었는데 티켓은 없었다. 님아>
전회, 전석 매진으로 오후 8시쯤의 상영분 티켓이 있을 뿐이란다.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제작비 1억 원 남짓에 불과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난데없이 관객 앞에 드러낸 오만함에 당황했다고 할까.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였다. 장마철 어느 때, 검은 비구름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기세 좋은 햇살의 여운을 만났을 때와 같은 청량한 느낌이 솟았다. 블록버스터 작품 여럿이 걸린 멀티플렉스에서 이뤄낸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의 혁명 같은 선전에 뭉클했다. <님아...> 를 당장 보지 못해 아쉽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만날 다음 기회를 남겨두게 됐다는 사실에 위안 받으며 다른 작품을 골랐다. 님아...>
주말 이른 시간에 영화관을 찾는 일은 재미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복합관의 매표소 대기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는 일도 재미있고, 적당한 위치의 좌석을 고르며 할인까지 받았을 때 오는 만족감이 쏠쏠한 것이다.
테이블 좌석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일반 상영 때보다도 싼값이어서 횡재한 기분이 들고, 두 다리 펴고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노라면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포만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휴일 이른 아침을 영화로 여는 데서 오는 호사의 기분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만족감이다. 이 같은 호사가 앞으로도 내 삶의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라 상상하는 일도 좋다.
상영관에 앉아 스크린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입장하는 관객들을 살피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휴일 아침, 관객들은 모두가 밝고, 건강해 보인다.
기대감에 찬 다양한 표정과 연령대의 관객들이 좌석을 메워나간다. 젊은 층들과 중장년층의 경계 없는 동행이 이루어지는 극장 안에 나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다. 최근 몇 년간 관객층의 세대분포는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 왔다. 현저하게 늘어난 40/50/60대 관객층이 그것이다. 그런 변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문화향유에서 성숙도와 건강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고 진전된 변화라 할 것이다. 다양성은 영화의 중요한 본질이다.
동서와 고금,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심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그런 영화들을 보며 관객들은 인류이해의 광장에 초대받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통한 이러한 상호교감은 어떤 정치적 구호나 선동보다 자발성이 강하고 설득력 또한 큰 것이다. 몇 년 전 역시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울지마 톤즈> 를 상기하면 이해될 영화의 사회적 의미이기도 하다. 울지마>
관객층의 다양화는 한국영화의 기획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20대 관객층을 주타겟으로 하는 영화기획의 문제점들을 오랫동안 목격해왔다. 인본주의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아니라 국적불문의 유행성에 기대는 로맨틱 코미디 또는 조폭액션 장르 영화의 범람이 그 예이다.
영화의 미학은 찾을 수 없고 질 낮은 유행성의 포장만 남는 한국영화라면 끔찍하지 않은가. 이 문제점을 개선시키는 것은 영화인들의 반성이나 영화 투자자들의 양심의 발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관객층의 다양화에 있으며, 그들의 건강한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 상황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추세가 될 때, 영화기획의 지향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방향과 수준을 관객들이 결정해주는 이른바 ‘관객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다양한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들을 골라 즐길 ‘관객의 시대’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따뜻해지는 한국영화의 바람직한 미래상이기도 하다.
김영빈 인하대 교수∙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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