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의 복덩어리, 나에겐 애물단지

황선미 아동소설 ‘고작해야 364일’ 아이 성장통 유머러스하게 담아내

“나는 여태까지 나만의 새것을 별로 가져보지 못했다.

옷도 학용품도 하다못해 유모차에 딸랑이까지. 윤조가 쓰던 걸 얻어 쓰는 신세였다. 하기는, 태어났을 때 이미 방안의 모든 게 윤조 것이었다.

나는 그저 윤조의 세상에 끼어든 애 같았다. 좋은 건 다 가질 수 있는 얄미운 복덩어리. 이러니 내가 고분고분하게 형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나, 이 집 애 맞아?”

명조는 만사가 부루퉁이다. 형 윤조 때문이다. 고작해야 364일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뱃돈도 더 많이 받고, 장난감도, 새 옷도, 새 신발도 모두 다 윤조 차지였다. 심지어 열 살 인생의 로망이었던 보이스카웃 단복도 윤조에게 먼저 빼앗겼다. 할머니도 집안의 대들보라며 늘 윤조만 먼저 챙긴다. 삐뚤어진 건 이유가 있다.

아동소설 <고작해야 364일> (포북 刊)은 ‘동생’으로 태어난 것이 ‘원죄’라고 생각하는 열 살 아이 명조의 성장통을 담은 아동소설이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의 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미세하고 섬세한 감정을 일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

한국 만화영화사에 220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남긴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저자 황선미 선생님의 신작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의 연대와 ‘나’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분위기와 구성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아동소설이지만 독자의 대상이 ‘아이’로만 함축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의 어떤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생채기를 남길 수 있는 지, 아이의 어떤 행동과 말이 부모와 형제에게 상처를 나길 수 있는 지. 쉽지만 어려운 질문에 대해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시점에서 돌아볼 수 있는 갈등과 화해, 성장의 맥락들을 소설 속에 녹였다.

이로서 아이가 작은 마당을 나와 더 큰 세상으로 향했던 암탉 ‘잎싹’처럼 넓고 깊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한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억울해하기도 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 값 1만원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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