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이 말했다. “…의녀인 장금은 호산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을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아마도 내의원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헌부가 의녀 장금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불허하는 중종의 변(辯)이다.
대장금의 첫 등장이다. 중종 10년, 1515년 3월 21일의 기록이다. 그 후 29년간 역사에 등장한다. 기록마다 애틋함이 절절하다.
‘(임금이) 대비전의 증세가 나아지자… 의녀 장금에게 각각 쌀·콩 각 10석을 주었다’(중종 17년 9월 5일). “다만 의녀 대장금의 의술이 그 무리 중에서 조금 나으므로…이 전체아를 대장금에게 주라”(중종 19년 12월 15일). “내가 병을 앓다가 이제야 거의 회복이 되었다…의녀 대장금에게는 쌀과 콩을 각각 15석씩, 관목면(官木綿)과 정포(正布)를 각기 10필씩 내리고…”(중종 28년 2월 11일).
중종 39년 11월 13일, 왕이 위독해졌다. 바로 그런 때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금기일(禁忌日)이라며 의원들이 진찰하지 않았다. 이 일을 사관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상의 병환이 위급해졌는데 술가의 금기에 구애되어 의원을 들여 보내지 않았는데도 조신(朝臣) 중에서 한 사람도 이를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으니 진실로 통탄스럽다’. 근거 없는 속설로 임금을 방치했다는 탄식이다.
하지만, 대장금은 그날도 임금 곁을 지켰다. 밖에 있던 대신들에게 임금의 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지난밤 이경에 상께서 잠깐 주무시고 삼경에는 열이 많이 나서 야인건수를 들였으나 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낮부터 저녁까지 왼손과 오른손의 맥도는 어제와 같았습니다”. 결국, 이것이 중종의 마지막 병증 기록이 됐고 이틀 뒤 승하했다. 의녀 장금의 기록도 그날 이후 사라졌다.
그 대장금이 살아난 건 2003년이다. 54부작 드라마를 통해서다. 모든 것이 실제와 달랐다. 궁궐은 암투의 무대였다. 권력과 금력이 난무했다. 대장금은 그 중심에 있었다. 때론 맛을 그려낼 줄 아는 천재 요리사로, 때론 비리에 맞서는 비범한 전략가로, 때론 임금의 목숨을 살려내는 만능 의술가로 그려졌다. 각색이다. 요리사였다는 기록은 없다. 비리와 맞서 싸웠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게 대장금은 환생했고 2007년 이란으로 갔다. 500년 전엔 대식국(大食國)이라 불리던 먼 나라다. 마침내 그 중심 테헤란이 대장금으로 뒤덮였다. 가전제품 전시관 앞은 대장금 시청자들로 붐볐다. 거리에서 자동차가 사라졌다. 평균 시청률이 90%를 웃돌았다. 드라마에서 비치는 한국의 모든 것이 파라다이스가 됐다. 고대 신라를 표현하던 ‘동방의 유토피아’가 2천년만에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모든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중동의 1등이다. 휴대전화도 자동차도 1등이다. 건설 플랜트 진출도 1등이다. 중동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칼럼에서 ‘대장금이 졸업한 대학교의 교수라는 이유로 밥값도 받지 않더라’고 전했다. 70ㆍ80년대 값싼 노동력의 나라, 24시간 3교대 일벌레들의 나라. 그 대한민국이 대장금을 통해 알라가 약속했던 꿈의 나라가 됐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대장금은 거짓말이다’ ‘실록에는 한 줄밖에 없다’…. 틀린 말이다. 대장금은 역사(歷史)다. 조선 최고의 명의였으니 임금을 지켰다고 각색해도 좋았다. 유일한 여자 어의였으니 권력의 중심에 섰던 여성이라 각색해도 좋았다. 승하하려는 임금의 마지막을 지켰으니 왕의 여자라고 각색해도 좋았다. 실록을 읽고 또 읽어 가며 힘들게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물이다.
며칠 전 그 중동을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왔다. 현지 언론의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15억 이슬람교도가 먹는 할랄(Halal) 식품 수출의 길을 열었다고 한다. 60조원 중동 의료 수출의 길도 닦았다고 한다. 500년 전 중종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대식국 진출이다. 500년만에 환생한 대장금이 있어 가능했다. 실록에서 추려낸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만들어 낸 창조문화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꼭 이루고 싶다는 창조경제. 어쩌면 그 해답은 대통령이 다녀온 바로 그 중동 길 위에 널려 있었는지 모른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중동에 간 대장금이 창조경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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