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위플래쉬·서편제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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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만한 데도 없이 천허기만 한 소리요”. 송화(오정혜 扮)가 말한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터이니 사양치 말고 좀 들려주시오”. 동호(김규철 扮)가 부탁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이와 동생이다. 그 사이 장님이 된 누이의 소리와 동생의 북소리가 어우러진다. “그때으 심봉사가 부친 눈을 띄우려고 만경창파를 떠나는디”. 7분 43초 동안 이어지는 심청가 롱테이크다. 한국 최고의 음악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이다.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송화의 창법이 원숙하다. 외국 평론가들은 이 부분을 궁금해했다.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의 음색 때문이었다. 사실 이때의 심청가는 오정혜의 것이 아니다. 명창(名唱) 안숙선이 불렀고 오정혜는 입을 맞췄다. 소리꾼 출신 배우 오정혜조차 양에 차지 않았던 임권택 감독의 욕심이었다. 음향의 끊어짐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구했던 완성도에 대한 고집이었다. 관객 113만명이 들며 당대 최고의 영화로 기록됐다. ▶앤드류(마일즈 텔러 扮)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학생이다. 최악의 폭군 교수 플렛처가 스승이다.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폭언과 모욕뿐이다. 급기야 스틱을 가지러 갔던 앤드류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오지만 플렛처는 시간이 늦었다며 자리를 빼앗는다. 그 사이 앤드류는 서서히 최고의 드러머로 발전해 간다. 상영 중인 미국 음악 영화 ‘위플래쉬 (Whiplash)’다. ▶이 영화 마지막에도 9분짜리 롱테이크가 나온다. 재즈 명곡 카라반(Caravan)에 실린 앤드류의 드럼이 불을 뿜는다. 최고의 드러머만이 할 수 있는 연주다. 대역은 없었다. 주인공 마일즈 텔러가 연주했다. 6살부터 피아노, 15살부터 드럼을 연주했던 그다. 이 영화만을 위해 하루 4시간씩 피나는 연습을 했다. 연습 도중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영화 장면은 실제에서도 수없이 목격됐다. 이런 위플래쉬에 아카데미는 남우조연상, 음악상, 편집상을 안겼다. ▶1993년, 명창이라는 대역을 써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던 한국 음악 영화 ‘서편제’. 2014년, 배우의 솔직한 땀을 통해 음악가의 혼을 표현한 미국 음악 영화 ‘위플래쉬’. 두 영화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와 동서양이라는 공간적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은 하나다. 예술의 끝을 향한 인간의 처절한-어쩌면 죽음 직전까지 다가서는- 도전정신. 두 영화가 위대한 이유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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