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꽃 비가 내렸다. 지난 주말 곳곳에서 열린 봄꽃 축제의 화려함을 만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 이번 주를 기약했는데, 봄비에 꽃 비만 즐긴 셈이 됐다. 그래도 세상은 온통 꽃 천지이다. 지난 겨울이 비교적 따뜻해 서둘러 봄 마중을 나왔던 벚꽃에 뒤질세라 진달래며 개나리가 앞다투어 피더니 이제는 영산홍이다.
오랜 경제불황에 먹고사는 것마저도 걱정하는 때에 ‘웬 꽃 타령이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바쁜 일상에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그나마 눈만 돌리면 꽃이라도 볼 수 있는 이 계절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람들은 아무리 아름답던 꽃도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만다는 것을 잘 안다. 피어 있을 때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질 때의 모습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이형기 시인은 ‘낙화’라는 시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거절하면 추함을 더할 뿐임을 암시한다. 시인 조지훈은 ‘낙화’라는 시에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라면서 떨어지는 꽃잎을 통해 ‘네 탓 공방’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낙화(落花)가 아름다운 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꽃을 지운 그 자리에 무엇보다 소중한 씨와 열매들이 자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련 없이 여름에 봄을 내어준다.
지금 대한민국은 봄비에 꽃들만 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기고 간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현 정권 비서실장에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일국의 국무총리마저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한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은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번만은 아니겠지’라며 자위하는 국민의 신뢰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녹음의 무성함과 풍성한 열매를 위해 낙화는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매번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낙화를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은 답답할 따름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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