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학생이 보상받는 ‘성공의 사다리’… 유쾌한 반란”
영특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 11살이 되던 1968년 아버지의 별세로 가세가 기울면서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판잣집이 강제 철거되면서 소년은 홀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성남으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에서 살았다. 가족 부양을 위해 상고에 진학했고 졸업 후 은행에 취업했다. 가난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야간대학에 다녔다.
어느 날 독신자숙소에서 ‘고시’ 잡지를 발견한 그는 밤을 지새며 공부에 매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32년간 공직생활을 하며 기획재정부 차관에 이어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역임하는 ‘고졸 신화’를 이룬다.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의 인생 스토리다.
지난해 7월 돌연 사의를 표하고 공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던 그가 지난 2월 아주대학교 제15대 총장이 돼 돌아왔다. 이어 김 총장은 취임 후 첫 사업으로 ‘AFTER YOU’ 프로그램을 기획, 추진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꿈을 포기한 학생들을 위한 기부금을 조성, 해외 명문대 연수를 시켜주는 사업이다.
그가 항상 주창하고 있는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과도 일맥상통한다. 김 총장은 “‘아주인’들에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 자기 자신, 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키는 이른바 ‘유쾌한 반란’을 제안하고 있다”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어 노력하는 학생이 성공하는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유쾌한 반란’을 꿈꾸는 김총장으로 부터 앞으로의 활동계획 등을 들어봤다.
Q 총장 취임 후 첫 사업인 ‘AFTER YOU’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달라.
A ‘AFTER YOU’는 나보다 너 먼저라는 의미다.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 세계 명문대 연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주위의 나보다 어려운 학생들을 보내자는 뜻에서 ‘그 친구를 보내자!’라는 부제를 붙였다. 영어나 학업성적이 아닌 학생들의 가정형편과 열정을 기준으로 8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아주대 학생뿐만 아니라 경기도 내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20% 정도의 기회가 돌아간다.
해당 사업은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을 높여 우리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참가학생들은 올 여름 4주간 해외대학 집중연수와 문화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연수대학은 미국의 미시간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그리고 중국 상해교통대학이다.
모두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이다. 맞춤형 집중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더 큰 세상에 눈 뜨고 도전 정신을 갖게 하려 한다. 참가학생들에게는 사전 교육과 프로그램 전·후 멘토링도 제공할 계획이다.
Q 기부방식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의 비용을 충당할 계획인데.
A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로부터 모금할 예정이다. 1명이 1억원을 내는 것보다, 100명이 100만원씩 내는 것이 더 의미 있다. 그런 취지로 ‘100만원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모으고 있다. ‘나보다 너 먼저’의 정신, 나눔의 가치가 아주대를 넘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Q 이른바 ‘고졸신화’로 유명한데, ‘그 친구를 보내자’도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것인지.
A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웠던 가정형편, 상고진학, 직장과 야간대학·고시공부 병행 등의 어려웠던 시절의 경험이 뒷받침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 개인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층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사다리가 많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사회 게임의 룰에 승복하게 된다. 교육이 사회적 지위와 부를 세습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Q 공직에서의 자진 사퇴, 대학으로의 복귀 모두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데.
A 여러 차례 표한 사의가 어렵게 수용돼 32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7월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지방 농가에서 일체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한참 뒤 아주대 총장천거위원회로부터 후보로 추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고사했으나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고민을 나누고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기여’라고 생각해 아주대로 오게 됐다.
Q 최근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유쾌한 반란’이란 주제로 직접 특강을 했는데.
A 총학생회가 강연을 요청하여 흔쾌히 승낙했다.
총장이 2천명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들었다. 신입생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반란’은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시켜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하기 때문에 ‘유쾌한’ 반란이다. ‘유쾌한 반란’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란 ▲자기의 틀을 깨는 자신에 대한 반란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사회에 대한 반란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신입생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반란’을 강조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부딪치고 깨지면서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Q 학생들과 브라운백 미팅을 즐긴다고 들었는데, 무엇인지.
A 총장과 대화를 원하는 학생들을 초청해 격의 없이 소통하는 자리다. 브라운백 미팅(brown-bag meeting)은 샌드위치나 햄버거 봉투가 갈색이라는 데 유래한 말로 간단한 식사를 하며 갖는 편한대화의 자리를 의미한다.
학생들은 누구든 올 수 있고, 무슨 주제든 이야기 할 수 있다. 학교 담당자는 학생들이 별로 오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신청자가 많아 대기인원이 있을 만큼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다.
Q ‘제2의 창학(創學)’을 기치로 다양한 학교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또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소개해 달라.
A 아주대 구성원 모두는 학교 발전에 대한 열망이 뜨겁고, 잠재력 또한 뛰어나다. 그런 열망과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발전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아주대만이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컨텐츠를 찾아 할 일의 우선순위와 순서를 정할 것이다. 동시에 실천 전략과 재원 확충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주대는 전국적 평판을 갖고 있고 가장 적극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하는 대학이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면 사상누각이다. 그런 철학으로 지역사회와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원시 핵심리더 양성과정’, ‘몽골 수원 시민의 숲 조성행사’ 등이 최근 함께 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아주대 명사초청강연인 ‘아주강좌’와 학교 도서관도 지역주민에 개방하고 학교 축제에도 주민들을 초청하는 등 지역 주민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쳐서 깨져보고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어 봐야 한다. 자신을 쏟아 붓는 ‘눈먼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눈으로 봐도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대담=박수철기자
정리=송우일기자
사진=추상철기자
Profile
1957년 1월28일 충북 음성 출생
학력
미국 미시간대 정책학(박사 1993, 석사 1991)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1988)
국제대학 법학과 졸업(1982)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1975)
주요경력
2015 아주대학교 총장
2013-2014 국무조정실장(장관급)
2012-2013 기획재정부 2차관
2010-2012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2009-2010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
2008-2009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2008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
2007-2008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2006-2007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2005-2006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2002-2005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메니저겸 선임정책관
2002-2003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2002 대통령비서실장 보좌관(국장급)
1999-2002 기획예산처 사회재정과장, 재정협력과장, 정보화담당관
1997-1998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 특별보좌관실 과장
1996-1997 ASEM준비기획단 총괄과장
1995-1996 재정경제원 과장(파견, 정보통신부 국가망구축과장)
1994-1995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
1983-1994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예산실,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
1982-1983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
1982 행정고등고시(26회), 입법고시(6회)
상훈
홍조근정훈장(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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