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주인공 덴고는 일요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년시절의 덴고는 일요일이면 NHK 수신료를 걷으러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 낯선 집들을 찾아 다녔다.
그는 아버지 옆에서 동정심 유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됐고, 그 날은 일주일 중에 가장 짜증나는 하루가 됐다. 매주 일요일이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요일을 불편한 날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유년시절의 경험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어렸을 때 신체적ㆍ정신적 학대를 당했거나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져 방임 상태에 놓였던 아이는 그 상처와 충격으로 어른이 돼서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가 심각한 상황이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력과 방임이 종종 보도돼 충격을 주고 있다. 아동학대는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 신문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학대로 숨진 아이들은 263명에 이른다. 이 중엔 이름도 갖지 못한 신생아 살해 59명, 동반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살해 후 자살’ 92명(추정)이 포함돼 있다.
아이들을 학대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은 이유는 황당하다. ‘잠을 자지 않아서’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서’ ‘울어서’ 등 생리적인 이유로 학대한 사례도 많고, ‘말을 잘 안 들어서’ ‘욕설을 해서’ ‘거짓말을 해서’ ‘고집을 부려서’ 등 훈육을 명분으로 한 학대도 많다. ‘사랑해서’ 였다는 이유도 있다.
아동학대 중 대부분은 친부모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 칠곡과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아동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지만 실제는 친부모 학대가 훨씬 심각하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15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아동(0~17세)을 학대한 사례는 6천796건으로 전년대비 393건 증가했다.
아동을 학대한 행위자는 친부모가 76.2%가 가장 많았고 계부모(3.7%), 친족부모(2.1%), 부모동거인(1.3%), 이웃(0.8%) 등의 순이었다.
친부모에 의한 폭력행위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가해져 고문 수준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들은 자신의 행동이 훈육이라고 착각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돼선 안된다. 그 위에 사랑이나 훈육과 같은 이름의 옷을 입히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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