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내·친·아(내 친구 아버지)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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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씨가 썼던 표현 중에 이런 게 있다. ‘내친아’(내 친구의 아버지). 보수논객답게 그 뜻은 북 체제로 풀었다. 능력보다는 출신성분을 중히 여기는 북한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성분에 따라 인생이 정해진다. 조씨는 그 대표적 사례로 김정은을 들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있어 30대에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물론 ‘내친아’란 표현은 북한에 없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단어 조합을 응용해 조씨가 만든 말이다. ▶권력의 이어짐은 대한민국에도 있다. 판사 집안에서 판사가 나오기도 하고, 정치인 집안에 정치인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그 권력이 태생적으로 세습되지는 않는다. 아들 판사도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가능하고, 아들 정치인도 선거에 이겨야 가능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유신공주라 비난하는 소리가 있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물려받은 권력이란 뜻이다. 하지만, 여론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51.6%의 득표율이었기 때문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집안의 예는 다르다. 친손자(12세)가 보유한 주식은 264억원4천만원이다. 나머지 6명의 친ㆍ외손주들은 똑같이 258억원3천만원씩 갖고 있다. 2014년 말, 아이들의 주식은 각각 82억9천500만원이었다. 불과 6개월여만에 3배 이상씩 늘었다. 천부적 투자능력을 갖추고 있을 리는 없다.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주식이다. 거기엔 어떤 자격시험도 선거도 없었다. 이런 태생적-1억 이상ㆍ12세 미만- 주식 부자가 121명이다. ▶그렇지 못한-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다수의-아버지들은 오늘도 걱정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사교육비를 마련해야 한다.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언제부턴가 얹혀진 새로운 짐이 있다.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야 하는 아들의 직장 알선이다. 청년 실업 100만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책임이다. 보육 책임, 사교육 책임, 대학 등록금 책임, 취업 책임…. ▶이런 아버지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친구 아버지’다. “내 친구 아버지는 유학도 보내주는데” “내 친구 아버지는 아파트도 사주는데”. 유학비 대주지 못하는 죄인이다. 아파트 사 주지 못하는 죄인이다. 능력 없음을 실토할 수도 없다. 자식 앞에 당당함은 아버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5월 가정의 달. 대한민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내친아’에 한숨짓고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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