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가 미국 동부의 8개 사립 명문대를 지칭하는 아이비리그 중에서 유독 높은 학점을 준다는 비판이 많았다. 2001년 보스턴 글로브는 “하버드 학부생의 91%가 평균 학점 ‘A-’ 이상을 의미하는 ‘우수’ 또는 ‘최우수’로 졸업한다”며 “아이비리그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하버드대는 ‘우수 졸업 및 최우수 졸업’ 대상자를 60%로 줄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하버드의 학점 인플레 논란은 계속됐다. 2013년 12월 하버드대 학보 크림슨은 ‘A학점 폭격기’라 불리는 교수들의 학점 퍼주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아이비리그 명문대도 이 문제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 2012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학점 인플레를 조사한 예일대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졸업한 학부생의 62%가 ‘A-’ 학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프린스턴대는 2004년 학점 관리 규정을 바꿔 학부생 중 ‘A-’ 학점 이상이 전체의 35%를 넘지 않도록 했다. ‘짠물 학점’이 우수 학생들의 프린스턴대 진학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일자 프린스턴대는 3학년과 4학년에 한해서 이 비율을 55%로 완화했다.
미국은 학부생의 평점이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학점이 매우 중요해 대학 측에서 학점 인플레를 용인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점 뻥튀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대학알리미에 소개된 서울 주요 대학 12개교의 졸업생 학점 분포를 보면, 평균 90점(A학점) 이상을 받은 졸업생 비율이 절반을 넘는 대학이 한국외대(68.4%), 서울대(61.8%)를 비롯해 7개 대학에 달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재학생의 평균 A학점 취득비율이 50%가 넘는 곳은 서울대를 제외하고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학생들이 재수강, 삼수강을 통해 졸업할 때 학점을 높인 결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학점 인플레와 졸업을 늦추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 부정행위 등을 통한 학점경쟁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학점 인플레가 심화되는 것은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에 유리하게 하려고 마구잡이로 높은 학점을 주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빗나간 온정주의가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을 오염시키고 있다. 학점 인플레가 학생들 개개인의 성적에 대한 불신과 함께 대학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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