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급증하는 노인범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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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의 할머니가 동네 수퍼마켓에서 5천원짜리 참기름 한 병을 훔쳤다. 미리 준비해간 비닐봉투에 몰래 참기름을 담은 뒤 다른 물건들만 계산하는 수법으로 슬쩍 했는데 CCTV에 찍혀 덜미가 잡혔다.

또 다른 할머니(69)는 설탕 한 봉지와 커피 한 통 등 1만8천원 어치 물건을 훔치다 역시 경찰에 붙잡혔다. 빌라 출입문에 세워 둔 유모차를 끌고 간 80대 할머니, 교회 주차장에 널어놓은 카펫을 들고 간 70세 할머니도 최근 절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모두 전과가 전혀 없고, 홀로 사는 노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견물생심에 우발적으로 절도를 저지른 것으로, CCTV 추적 등으로 잡힐 거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전했다.

부족한 사회안전망 속에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을 겪는 노인들이 범죄 유혹에 빠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심리적으로 소외되다보면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거나 왜곡된 생각을 갖게 돼 일탈행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노인들의 강력범죄도 늘고 있다. 전남 영암 초등학생 4명 성추행 사건,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 전남 장성 요양병원 방화 사건 등 최근 일련의 사건은 범인이 모두 노인이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범죄는 지난 2011년 6만8천836건, 2012년 7만1천721건, 2013년 7만7천26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살인이나 강도, 강간, 방화 등의 강력범죄는 같은 기간 759건, 818건, 1천62건으로 2년 사이 40%가 늘었다. 노인들의 범죄 증가율이 가히 폭발적이다. 이대로 방치하다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을까 우려된다.

대부분의 범죄는 화를 못 참아 ‘욱’ 하는 분노조절장애 형태로 나타난다. 가난하고 아픈데 소외감까지 겹친 것이 원인이다. 이런 장애는 부당대우를 받았다는 불만으로 생긴 증오와 분노가 지속되다가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하는 현상이다.

상당수 노인들이 경제(빈곤)와 건강(질병), 소외감, 무위(無爲ㆍ하는 일이 없음) 등 4고(苦)에 시달린다. 노인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노인 일자리와 주거난 해결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동시에 노인들의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여가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노인 범죄를 전담할 기구가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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