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은 지역의 42%가 미군기지였고, 주한미군 3만5천여명 가운데 1만여명이 이 지역에 주둔했다. 자연스레 기지촌이 발달했고 미군부대 앞 클럽도 호황을 누렸다. 보산동 일대 클럽거리는 한때 ‘양색시’나 ‘양공주’로 불리는 한국여성들이 달러를 벌어들이던 산업전선이기도 했다.
보산동 클럽거리는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앞 거리에 위치한 미군 전용 유흥가다. 당연히 내국인은 출입금지다. 보산동은 1970~80년대 클럽이 100개가 넘을 만큼 전성기를 누렸고, ‘개도 달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이 넘쳤다. 90년대 중반까지 경기가 괜찮았으나 이후 이라크 파병과 미군 재배치 계획으로 캠프 케이시 병력이 크게 줄면서 동두천 경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50~60년대 동두천의 미군 클럽에선 미8군 가수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을 비롯해 윤항기, 현미 등 실력있는 가수들이 이곳 무대에 올라 돈과 명예를 얻었다. 특히 신중현은 영국에서 비틀즈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1963년 국내 최초의 록밴드 ‘에드포(ADD4)’를 결성해 동두천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동두천은 방값이 저렴했고, 미8군 주력부대인 보병 2사단이 주둔한 만큼 일거리도 많았다. 그는 이 곳에서 2년 동안 거주하며 희대의 명곡 ‘미인’ 작업도 했다. 당시 신중현의 기타 연주를 듣기 위해 지방 주둔 미군들이 트럭을 타고 동두천으로 모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동두천은 K팝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 록의 발상지인 동두천에 록 음악을 중심으로 한 ‘아날로그 뮤직시티’를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동두천시가 신중현씨와 손잡고 캠프 케이시 주변의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를 ‘케이-록(K-Rock) 빌리지’로 가꾸기로 한 것이다. 관광특구 안에 남아 있는 클럽과 공연장의 음향 장비 등을 모두 아날로그화 해 전세계 음악인들이 찾고, 젊은 음악인들이 거쳐 가야 할 록 음악ㆍ관광 명소로 만든다는 것이다.
동두천시는 다음달 초 신씨와 양해각서를 맺고 사업에 착수해 2017년까지 K-Rock 빌리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공연장과 신중현 거리, 기념ㆍ홍보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두천시가 K-Rock 빌리지 조성과 함께 기지촌의 오명을 벗고 문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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