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김인명(90) 할아버지는 1950년 초겨울 26살 나이에 아내와 헤어져 남쪽으로 떠나왔다. 마을 치안대에서 근무하다 인민군에 쫓겨 마을 뒤 목화밭에 몸을 숨길 때까지만 해도 금방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로 생각했던 생이별의 시간은 65년이 지났다. 20대 청년은 백발의 노인이 됐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김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릴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야속하게도 가족을 만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처럼 6ㆍ25전쟁 때 가족과 헤어져 지금까지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지난달 말 기준 남한에만 12만9천688명이다. 북에 남은 가족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등록하지 않은 이산가족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다. 이산가족 중 절반 가량인 6만2천845명은 이미 숨져 생존자는 이제 6만6천843명에 불과하다.
남북의 이산가족이 처음 만난 것은 분단 40년 만인 1985년 9월 20일 남북 예술단 교류 및 이산가족 상봉 시범사업이었다. 하지만 생사확인 작업없이 고향 방문을 목적으로 진행한 사업이라 실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경우는 절반에 그쳤다.
사전 조사를 거친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8월 15일 제1차 대면상봉 행사를 통해 처음 성사됐다. 이후 2007년까지 매년 상봉행사가 열렸지만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인원은 800∼1천200여명에 불과했다. 그 마저도 남북관계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금까지 19차례의 대면상봉으로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은 총 3천934가족, 1만8천799명이다. 이 가운데 남측 인원은 1만2천297명 정도다.
이산가족은 고령으로 인해 매년 3천명 가량이 사망하고 있다. 이에 대한적십자사가 생존자들을 상대로 유전정보 보관사업에 나섰다. 이산가족의 혈액과 머리카락,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해 사후에라도 북에 있는 가족과 혈연관계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조치다. 적십자사는 북측 가족에게 남기는 영상편지도 만들고 있다. 영상편지는 10~13분 분량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고 고향, 가정, 추억 등 일상적인 얘기 등을 담는다.
현재 남북 이산가족은 대면상봉은 커녕 화상ㆍ서신교환도 ‘올 스톱’ 상태다. 이산가족이 사후 영상편지로 만나기보다 살아있을 때 뜨거운 상봉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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