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박영수 前고검장의 빠찡코 대부 변론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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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한잔하지’. 햇병아리 기자가 마다할 이윤 없다. 선배와의 모든 경험이 곧 공부다. 수원시내 한 카페로 따라갔다. 예약된 자리는 한쪽 귀퉁이였다. 와 있던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수원의 마지막 주먹’이라 불리던 ‘두목’이었다. 햇병아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이 사람이 여기에….’ 하지만 놀라긴 일렀다. 곧이어 머릿속을 더 ‘복잡스럽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깡패 잡는 현직 강력부장검사였다.

‘두목과 기자와 부장검사’. 자리의 호칭은 ‘형님’과 ‘아우’였다. 감옥 가던 얘기, 감옥 보내던 얘기가 다 유머였다. 간간이 섞어 넣는 선배 기자의 추임새도 분위기를 맛깔지게 했다. 햇병아리 기자만이 끝까지 관객이었다. 한참 뒤 부장이 일어섰고 일행이 따라갔다. ‘두목’이 뭔가를 가져와 부장 승용차에 실었다. 작지 않은 크기의 도자기였다. 그날의 주인공들은 뒷날 사업가로, 고검장으로, 존경받는 기자로 승승장구하며 커갔다.

벌써 20여 년 전 얘긴데….

지난 17일,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전(前) 고검장, 박영수 변호사가 피습당했다. 범인은 건설업자 이모씨다. 범행 당시 “당신의 전관예우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고 소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변호사 위해(危害)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박 변호사 피습의 충격은 크다. 그가 갖고 있는 검찰 역사 속 비중 때문이다. 알아주던 특수ㆍ강력통 검사였다. 대검중수부장에 고검장까지 했다. 아는 이들이 많은 만큼 받는 충격도 크다.

곧 여론이 들끓었다. ‘범인을 엄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루도 안 지나 대한변호사협회가 논평을 냈다. “사건 당사자가 상대방 변호인의 생명과 신체를 공격하는 사적 보복 행위는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종편에 출연한 논객들도 ‘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거품을 뿜었다. 맞다. 변호사 보복은 법정 보복이다. 법정 보복은 법치의 근본을 흔든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략된 토론이 있다.

이 사건엔 아주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박 변호사가 변론했다는 의뢰인의 이름이다. 빠찡코의 대부라는 형용사가 따라붙던 이름이다. 6공 황태자 박철언을 몰락케 했던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지금도 이런 형용사가 붙는다. 기업형 폭력계 대부, 슬롯머신계 황제, 권력 유착의 거악. 바로 정덕진씨다. 그가 박 변호사가 변론한 의뢰인이다. 그리고 범인 이씨는 이런 ‘전 고검장-전 빠찡코 대부’ 조합과 싸우다 재판에서 진 것이다.

도통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박 변호사는 검사의 꿈인 고검장이었다. 부패 척결의 지휘부인 대검중수부장이었다. 폭력조직과 맞서던 강력부장이기도 했다. 정씨는 비리의 상징이었다. 뇌물로 권력을 요리하던 부패의 장본인이었다. 폭력조직을 거느린 위장 사업가였다. 그런 박 변호사와 그런 정씨가 법정에서 한편이 됐다. 2천만원-박 변호사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의 소송비로 우군(友軍)이 됐다. 혼란스럽기 짝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더 황당한 연(緣)이 있다. 박 변호사와 정씨는 한때 수사 검사와 수사 대상자였다. 1998년 9월 정씨가 해외상습도박과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정씨를 구속한 것은 서울지검 강력부다. 바로 그 강력부의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였다. 1998년에는 벌주고 벌 받던 관계였는데, 2009년에는 수임료 주고 받으며 서로 돕는 관계가 된 것이다. 적과의 동침인가. 드라마 모래시계인가. 국민이 혼란스럽다.

변협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정(自淨)을 강조했다. 윤리강령도 ‘명예와 품위를 보전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 정신으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변호사 등록도 거부했었다. 법인 카드를 편법 지출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잣대를 말하지 않았다. 피습 범인에 대한 엄벌을 말하면서 부적절한 수임 관계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변협이 이러다 보니 앵무새 논객들도 이 부분을 생략하고 끝내 버렸다.

변호사의 명예와 품위는 누가 점수 매기는가. 국민이다. 국민이 인정해주는 명예여야 하고, 국민이 인정해주는 품위여야 한다. 존경받던 고검장이 빠찡코 대부를 변론하는 모습에 명예를 부여할 국민은 없다. 수사했던 검사가 구속됐던 피의자를 변호하는 모습에 품위를 부여할 국민은 없다. 피습당해도 좋을 생명이 세상에 어디 있나. 이런 뻔한 토론보다 더 중요한 토론이 있었다. 국민에도, 검찰에도 꼭 필요했을 이런 토론이다.

-전 고검장의 전 빠찡코 대부 변론은 옳은 것인가? 국민이 믿는 사법정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후배 검사들이 안고 가는 명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前고검장과 前빠찡코 대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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