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대 후반 미국 석유시장의 95%를 독점하며 미국 경제를 주무르던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온갖 편법을 써서 석유사업의 동맥인 철도를 장악하고, 뇌물과 리베이트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록펠러가 얼마나 선행(善行)을 하든 그 부를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惡行)을 갚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인들은 그에게 ‘우리 시대에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줬다.
그러나 록펠러는 말년에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에게서 돈을 버는 재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면서 외아들 록펠러 2세가 자선사업가로 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했다.
그는 사업에서 손을 뗀 후엔 검소하고 신앙심 깊은 농부로 살다가 죽었다. 록펠러는 죽기 전 ‘위대한 기부자’라는 말을 들었고,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함께 존경받는 부자 패밀리의 선구자가 됐다. 카네기 또한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소신대로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했고 은퇴 후엔 자선사업에 헌신했다.
당시 최고 부자였던 카네기와 록펠러가 경쟁적으로 자선사업에 나선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행운이었다.
큰 부자가 큰 자선사업을 할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미국 부자들의 ‘통 큰 기부’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카네기와 록펠러가 만든 부자의 전통이다. 사람들은 게이츠와 버핏의 기부와 헌신을 ‘부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라는 찬사로 답했다.
며칠 전 ‘세계 34위 부자’인 사우디아라비아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두 자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전재산인 320억 달러(총 35조8천56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돈은 향후 몇 년에 걸쳐 왕자가 만든 자선기구인 ‘알왈리드 자선사업’에 기부돼 문화적 이질감 해소와 여성인권 향상, 재난 구호 등에 쓰일 예정이다. 왕자는 이미 이 자선기구에 35억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부자들의 기부는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기부는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윤활유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하다. 사회적 나눔보다는 대물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부자를 만나고 싶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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