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곳간 열쇠

최원재 정치부차장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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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와 장롱과 곳간의 열쇠를 인계인수 받으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집안 살림살이 일체의 권한을 이양하던 성스러운 배턴터치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 오래다. 부와 위세의 상징이었던 한 집안의 ‘곳간열쇠’.

대개 이것은 고래로부터 서방은 뺏겨도 이것은 빼길 수 없는 아녀자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며느리로부터 당당할 수 있었던 징표이자 바깥으로만 내 돌던 서방 바람 재우기 방편으로, 집안 건 사용으로까지 두루 사용되며 속곳 허리춤에서 쉬이 모습을 내놓을 줄 몰랐던 그 열쇠. 그것이 곳간열쇠인 것이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는 도의회 임시회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상시 예산 편성에 이어 ‘예산 편성 권한’ 자체를 경기도의회에 주겠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넘기는 듯 집행부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지던 예산편성권을 도의회에 넘기려 하고 있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집행부의 예산편성 권한을 의회에 주는 것은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처음이다. 이 때문에 이번 예산편성 권한의 의회 부여가 앞으로 도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는 자체사업예산 603억원 중 도의회 의장단, 대표단, 상임위원장에 최대 1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남 지사는 “예산편성과 관련해 의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사전에 수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도의회의 예산권 강화가 미래의 방향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일하는 사람(공무원)들부터 탁상에서 세워지는 예산 편성보다는 도민의 목소리, 현장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곳간의 주인은 도민이고 그 곳간은 그 주인인 도민이 필요로 하는 일에 열려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곳간의 열쇠를 쥐었다고 자신의 배만을 채우고 일부가 담합하여 여기저기 퍼 주며 인심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행부가 도의회에 예산 편성권한을 이양한 순수한 목적대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 도민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선적 사업에 제대로 곳간 문이 열리길 기대한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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