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삼성의 합병전쟁과 제2의 엘리엇

김규태 경제부 차장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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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모집해 조성한 자금을 국제증권시장이나 국제외환시장에 투자, 단기이익을 거둬들이는 개인투자신탁을 ‘헤지펀드’라 부른다. 투자지역이나 투자대상 등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노리지만 투자위험도 높은 투기성 자본이 바로 헤지펀드다.

헤지란 본래 ‘위험을 회피 분산시킨다’는 의미지만 헤지펀드는 위험회피보다는 투기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헤지펀드는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히 조합해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을 개발,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44일간의 합병전쟁’으로 일컬어진 삼성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싸움이 지난 17일 삼성그룹의 완승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통과됐다고 해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엘리엇은 한번 물은 먹잇감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헤지펀드다. 10년 넘게 소송을 끌며 수십배의 차익을 실현한 적도 허다했다. 엘리엇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병 주주총회의 무효소송,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삼성SDI, 삼성화재, 국민연금에 대한 배임소송, 한국자본시장법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불리하다는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 경영진 교체 요구 등에 대해 삼성은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에는 경영안정을 위한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본시장은 완전히 개방돼 적대적 인수합병도 가능하고, 규모의 경제가 커지면서 대주주의 지분은 작아졌는데 경영권 보호장치는 없는 게 국내 기업의 현실이다. 특히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도 약하다보니 외국투기자본에는 한국 기업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차등의결권 등 외국에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경영권 보호 장치를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도입해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제2의 엘리엇’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때마다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우리 기업을 모두 지켜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김규태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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