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전 하남시장(64)은 광주(廣州) 출신이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광주가 낳은 ‘인물’이었다. 30대는 직장인으로 잘 나갔고, 40대는 기업인으로 잘 나갔다. 50대는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다. 특유의 뚝심으로 돋보이는 4년을 보냈다. 2006년부터는 민선 하남시장으로 일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광역화장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지역이기가 만연한 사회에 주는 충격이 신선했다. 도지사를 향한 그의 ‘대망론’도 그즈음 퍼졌다. ▶그러다가 무너졌다. 시장직에 재도전하던 2010년이다. A 여성과의 ‘내연說’이 사단이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A씨 본인이었다. 정당과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폭로전을 폈다. 뿌려댄 자료에는 낯부끄러운 표현까지 기술돼 있었다. 김 전 시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 전 시장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세상은 매정했다. 한나라당 경기도당이 공천을 회수해 갔다. 그해 10월 11일, 경찰이 김 시장의 무고함을 밝혔다. 이때는 이미 그가 모든 걸 잃은 뒤였다. ▶와신상담 4년을 보낸 그가 2014년 명예회복에 나섰다. 친박(親朴)계라는 정치 상황까지 맞물리며 새누리당 하남시장 후보로 나섰다. 그때 ‘4년 전 악몽’이 다시 재연됐다. 그때와 똑같은 주장이 퍼졌다. 이번에도 A씨였다. 김 전 시장은 ‘4년 전 결론이 난 허위 사실’이라며 유권자에 호소했다. 하지만 ‘내연 관계’라는 선정적 소재(素材)의 파괴력은 이번에도 컸다. 5천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선거가 1년여 흐른 지난 23일, 이번에는 법원이 결론을 냈다. A씨에게 허위사실 유포죄를 물어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번에도 김 시장에겐 남은 게 없다. ▶언론 시쳇말에 ‘허리 아래 얘기’라는 표현이 있다. 성(性) 추문을 일컫는 비속어다. 일간 신문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음성적 전파력이 당사자에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공론화하지 않으니 검증할 길이 없고, 검증할 길이 없으니 해명할 기회도 사라진다. 김 전 시장을 두 번 침몰시킨 ‘내연說’이 딱 그랬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수군거리며 ‘작업’(作業)을 했을 뿐이다. ▶결론은 났다. 2010년 경찰과 2014년 법원의 주문(主文)이 같다. ‘김 전 시장이 피해자다’다. 하지만, 그가 잃은 어떤 것도 다시 채워질 수 없다. 그저 촉망받던 정치인이 환갑을 넘긴 초로(初老)로 바뀌어 가고 있을 뿐이다. 2010년 봄 어느 날 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그가 회 한 접시와 소주 앞에 앉았다. 쑥덕거리던 소문들의 진상을 깨알처럼 설명했다. 정치권과 얽힌 기막힌 뒷얘기도 털어놨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느냐’며 탁자도 내리쳤다. 그러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설움이 북받친 눈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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