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던 조정과의 만남… 어느덧 내 운명으로”

“‘조정’이라는 운동 종목에 전혀 문외한이었는데 이제는 제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됐네요.” 말복(末伏)인 지난 12일 용인 기흥호수 조정경기장에서 만난 수원 영복여자중학교(이사장 송충섭ㆍ교장 이정희) 조정팀 안승찬(53) 감독은 이름조차 전혀 생소했던 조정(漕艇) 종목을 맡게된 인연과 이제는 뗄래야 뗄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야기를 털어놨다.

안 교사가 조정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4월 영복여중의 창단 감독을 맡게되면서부터다. 20년 앞선 1977년 같은 재단 내의 영복여고에 조정부가 창단 돼 운영돼왔으나, 경기도 내에 여자 중학교 조정팀이 없어 우수선수의 조기 발굴 육성이 여의치 않았던데다 때마침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조정이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중학 선수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축구가 전공 종목인 안 교사는 이 계기로 전문 코치도 없이 영복여중 조정팀의 창단 감독을 맡게 됐고, 주위의 조정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면서 단 2명의 선수를 선발해 신생팀을 이끌고 첫 발을 내디뎠다. 창단 초기 안 교사는 전문 코치의 부재에 따라 영복여고 코치에게 선수 지도를 위탁한 뒤 자신도 기본기부터 용어, 기술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배워갔다. 초보 조정 감독인 안 교사는 오전 수업을 마친 후 오후에는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용인조정훈련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조정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눈을 뜨게됐고, 누구보다도 선수 관리와 조정인들과의 교분을 쌓는데 열정을 보이면서 어느덧 조정인의 한 사람으로 변모해 가게됐다. 덩달아 선수들의 기량도 향상돼 매년 전국 무대에서 입상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조정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사비를 들여 선수들의 간식과 회식을 책임질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조정’이라는 종목의 힘든 운동과정이었다. 자신의 딸과도 같은 예쁜 소녀들이 야외운동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얼굴에 오르(Oarㆍ노)를 젓느라 여린 손바닥이 나무껍질처럼 벗겨지고 거칠어진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었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내게 딸이있다면 조정을 시킬 수 있을 지 반문할 정도로 힘든 운동을 이겨내는 선수들이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대견하다”고 말했다. 안 교사는 이 같은 안타까움이 오히려 자신에게 20년 가까이 조정 감독을 맡게 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수급에 대한 어려움과 어렵게 발굴해 육성한 선수가 중도에 운동을 그만 둘때, 몇번씩이나 감독을 그만두고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 때마다 그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 것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은 선수들이었다. 안 교사는 “감독직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내가 창단한 팀을 흐지부지하게 만들어놓고 돌아서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 선수들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안 교사가 한결 여유를 갖게된 것은 8년전 교육청으로부터 전문 코치를 배정받으면서다. 이 때부터 선수 발굴에서부터 지도, 관리 등 코치와 함께 역할을 분담하면서 선수들의 기량도 부쩍 향상돼 3년전 송지선ㆍ마은기 등이 전국 대회 우승을 휩쓸며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에도 지난달 열린 제31회 대통령기 전국시ㆍ도대항조정대회에서 싱글스컬 금(신예원)ㆍ동메달(김예은)을 획득하고, 더블스컬에서 신예원ㆍ윤한나 콤비가 우승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정 문외한’에서 이제는 누구보다도 조정의 이론과 실전, 조정계의 인맥 등을 훤하게 꿰뚫는 전문가로 변신한 안 교사는 “교편을 잡는 동안 감독을 계속 맡아 선수들을 뒷바라지 하고 싶지만, 팀을 맡아 더 잘 이끌 후배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넘겨주고 뒤에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흔히 교육계에서는 사학의 교사들이 공립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 전문직으로의 승진을 꿈꾸는 것이 보편적이지 만 안 교사는 “내가 맡은 현재의 일(감독)이 천직이라 생각한다”며 “선수들과 함께 기쁨과 고된 여정을 함께 나누면서 지낼 수 있는 순간이 가장 나에겐 큰 행복이다”라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황선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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