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구슬을 꿰는 지혜

‘많이 힘들었구나’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

절망의 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에게 건네는 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얼마만한 효과가 있을까?

최근, 언론에서는 자살예방 시스템을 설치한 이후 오히려 자살 시도가 늘어난 ‘생명의 다리’ 논란에 대해 보도했다.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는 사람이 지나가면 센서가 자동으로 이를 인식해 준비된 문장을 내보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자살예방 프로그램이다.

‘밥은 먹었니?’ ‘잘 지내지?’ ‘많이 힘들었구나’ 등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극단적인 선택을 되돌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년 전, 처음 시작 된 이후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은 물론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칸 국제광고제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물론 39개 세계광고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한강대교에도 같은 시스템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외의 호평을 받은 자살 예방 시스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 마포대교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불과 3년 만에 이전에 비해 자살시도가 오히려 12배나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전문가들은 ‘명소화 효과’를 들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 머릿속에 마포대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마포대교를 찾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 아닌 지극히 감성적인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저런 지적과 문제 제기에 결국 서울시는 현행 시스템을 중단하고 새로운 방안을 찾기로 했으며, 이를 둘러싸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까지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쌈박한’ 광고적 효과만을 생각하고 참여했던 기업이나, 자살에 이르게 되는 개인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수립과 실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 모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많은 기업들의 신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는 크게 변할 것 없는 환경과 반복적인 일에 익숙해져 본의 아니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많은 사회복지기관과 단체에 자극과 함께 새로운 동기부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을 초래한 환경과 제도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단순히 외적, 홍보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경우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오랜 시간 고민해서 만들어 낸 프로그램이나 사업이 사실 현장이나 당사자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일도 자주 보게 된다. 이렇게 되는 가장 이유는 아무리 작아 보이는 사회 문제, 복지 문제라 하더라도 수많은 사회적, 경제적 심지어 개인적인 복잡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 역시 한 방향, 한 가지 만으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사회복지현장의 노력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향,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해 관계자의 집단적 협력과 이를 통한 성과 창출, 즉 ‘컬렉티브 임팩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흩어져 있거나 단편적인 많은 노력과 활동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 정렬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 기업, 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의 제대로 된 문제인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꾸준하고도 진실한 대화와 협력이 절실하다.

전흥윤 인천공동모금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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