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20. 시흥 ‘연다정’ 카페 실버 바리스타 김경자·유재희씨

행복을 더한 커피잔… 건강도 웃음도 되찾았어요

▲ 실버 바리스타 김경자•유재희씨가 직접 만든 커피를 건네며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오승현기자

“손님들이 제가 만든 커피가 맛있어 또 다시 찾아 왔다고 말씀하실 때 보람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게를 찾는 모든 분들이 복잡한 삶 속에서도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습니다”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이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주민의 쉼터 조성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연다정’ 카페.

한 여름의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날,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클래식 음악이 매장을 꽉 채운 가운데 실버 바리스타 김경자•유재희씨(71)가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가정주부로 살아오며 집안일과 자녀 양육에 평생을 바친 두실버 바리스타는 오랫동안 서서 커피를 내리느라 다리가 아플 법도 하지만, 얼굴에는 진한 친절함과 편안함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특히 모든 손님에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커피를 전달하는 두실버 바리스타의 모습에서 손님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또 향긋한 커피를 음미한 손님들의 표정에서도 소소한 행복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가정주부에서 실버 바리스타로 변신, 제2의 인생을 사는 김경자•유재희씨는 “커피 덕분에 노년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이겨냈고, 건강도 웃음도 되찾을 수 있게 됐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평생을 가족에게 헌신했던 ‘엄마’, 커피의 세계로 들어서다

김경자·유재희씨는 모두 가정주부로 가족만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왔다. 평생을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온 두 사람은 자신이 바리스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바리스타 양성 코스에서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황혼의 꿈을 찾아 바리스타의 세계에 입문했다.

김경자씨는 “큰딸을 따라 시흥으로 이사를 온 뒤 낯선 곳에서 외롭게 지내던 중 우연히 복지관에 나가게 됐고, 이후 바리스타 프로그램에 호기심을 느껴 배우게 됐다”며 “부산을 떠나오기 전 남편과 사별하고 한동안 허전함에 빠져 있었는데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한 “사실 바리스타 양성 수업을 듣기 전에는 카페 근처에도 가보질 않았다”며 “지금은 어디를 가든 무조건 주변 카페를 방문해 커피 맛을 음미하는 것은 물론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손놀림도 자세히 관찰하는 경지가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유재희씨도 실버 바리스타가 되기 전에는 직장을 가져본 일이 없다고 했다.

유씨는 “결혼 전 상록수를 읽고 봉사활동에 심취해 청주에서 야학 설립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해본게 사회생활의 전부”라며 “거기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한전에 다니던 남편을 따라 청주와 서울, 원주, 홍천, 광명 등으로 이사를 다닌 까닭에 직장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이 과거에는 여자가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편견 때문에 가정주부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만큼 뒤늦게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유씨의 경우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이름이 멋있게 느껴져 커피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됐다. 그는 “처음 배울 때는 일할 수 있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다만 이름이 멋있어 보였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업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첫수업의 기억과 실수투성이 ‘초짜’ 바리스타

그토록 원하던 바리스타 과정을 듣게 된 김씨는 첫수업을 받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김씨는 “카페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었지만 좋아해서 신청했으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배울 수 있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 매주 수업이 기다려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막상 바리스타 양성 과정에 등록해 수업을 듣게 됐지만, 초짜 교육생이었던 두 사람 역시 실수를 피할 수 없었다. 수업이 일주일에 한번 진행되는데다 배우는 커피의 종류도 다양하다보니 레시피를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교육을 받은 수료생들은 외부 매장에서 일하기 전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일종의 수습 기간인 셈이다.

유씨는 “봉사활동을 한번은 한 손님이 카페모카를 주문했는데 커피를 안넣고 초콜릿 시럽에 우유만 부어서 드렸다”면서 “뒤늦게 실수한 걸 깨닫고 부랴부랴 손님을 따라가 커피를 따라 준적이 있다”며 그동안 숨겨 왔던(?) 비밀을 털어놨다.

특히 커피 종류별로 레시피를 틈틈이 암기해 완벽하게 숙지했음에도 실수는 이어졌다. 김씨도 “캐러멜 마키아토 만드는 방법을 어렵게 외웠는데도 양 조절에 실패하는 일이 잦았다”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우유 등 재료를 따로 준비해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반에는 커피머신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는데 지금은 20여가지의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 ‘건강과 행복’ 두 마리의 토끼… 그리고 새로운 도전

1년간의 고된 연습을 통해 어리바리한 교육생 신분을 벗어나 어엿한 바리스타가 된 두 노인은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더욱 건강해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까닭에 운동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두 노인은 바리스타 일을 하게 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김씨는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며 “건강을 유지하며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마음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유수영도 가능한 실력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씨 역시 “매일 남편과 탁구를 치기 시작했고, 출근하기 전 매장 앞에 있는 연꽃테마파크에서 1시간 동안 걷는 습관을 갖게 됐다”면서 “운동을 하면서 활력도 생기고 덕분에 웃으면서 손님들을 맞을 수 있어 일상이 즐겁다”고 강조했다.

건강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사랑도 깊어졌다. 직장을 갖고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것에 대한 가족들의 든든한 믿음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또 명절 등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향긋한 커피와 달콤한 스무디 등 각자 갈고 닦은 커피 제조 실력을 뽐내면서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애해졌다.

유씨는 “일곱살 손주에게 바나나와 딸기를 얼려 스무디를 해줬는데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건 뭐든지 제일 맛있다’고 말해 감동받았다”고 신이나 말했다. 이어 “첫 월급으로 남편에게 용돈을 줬는데, 활짝 웃는 남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도 “최근 큰딸 가족이 매장을 찾아와 커피와 팥빙수를 만들어줬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면서 “특히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두 손녀가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칭찬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러웠다”고 설명했다.

두 실버 바리스타는 앞으로 정식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커피로 인해 제2의 황금기를 맞게 된 만큼 제대로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은 커피 위에 하트 등을 장식하는 ‘라떼 아트’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두 노인은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앞으로도 어려운 일들이 많겠지만, 자녀들을 키워낸 ‘엄마의 힘’으로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우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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