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산업으로 대변되는 공장의 건설은 산업혁명 이후 발전과 성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노동자의 피땀으로 피어 올린 굴뚝의 연기가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활기찬 밑그림이 되어 기적처럼 전후의 폐허를 극복하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와 화석에너지 위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굴뚝산업은 더 이상 희망과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기피산업이 되었고, 사는 게 나아지다 보니 몸이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마저 급감해 공장의 일자리는 외국인 근로자들로 겨우 채워지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물결 속에 굴뚝은 경제를 살리지도, 일자리를 만들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 도시 속의 공장 건물과 굴뚝은 효용가치가 낮아지자 급기야는 낡고 스산한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공해, 악취, 환경파괴 등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는 그렇게 낙후된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여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용도를 다한 기존의 산업 폐공간에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 전국 도처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문화공장’, ‘예술공장’, ‘창작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도시 이미지와 환경개선은 물론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증대와 예술가들의 창작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녹색산업’과 ‘창조경제’와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공장·발전소 등 버려진 산업기반시설에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는 중요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2000년,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변신시킨 ‘테이트 모던’은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건축물이라는 평판까지 얻었고 연간 방문객이 5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뉴욕 브루클린에서도 조선·제약·설탕공장 등이 신예 예술가들의 산실로 다시 태어났다.
캐나다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는 양조장이 문을 닫은 후 2003년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붉은 벽돌로 지은 40여 개의 빅토리안 시대 건축물들이 현대식 갤러리, 극장, 레스토랑,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변신하여 토론토의 명소가 되었다. 중국 베이징 다산쯔(大山子)지역의 군수공장 지대도 예술타운으로 탈바꿈했다. ‘798 예술특구’라고 불리는 이곳은 300여 개에 달하는 창작실을 비롯해 갤러리, 패션숍, 스튜디오, 레스토랑, 출판·디자인 회사 등이 밀집해 있다. ‘문화창의산업기지’로 세계적 유명세를 얻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서울 한강변에 위치한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00년 폐쇄된 마포석유비축기지도 내년 말 상설 공연장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최근 부천시는 생활쓰레기를 소각 처리하다가 15년의 사용 연한을 끝내고 2010년 가동을 멈췄던 폐소각장을 문화예술공간 ‘부천 미래문화 플랫폼’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문제는 이 문화·예술공장들이 과거의 공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력과 자본만 투입해서 기계를 가동하면 제품이 뚝딱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니고 단기간에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헤아려야 한다. 어쩌면 손해 보는 장사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씨 뿌리고 물 주고 거름 주며 한낮의 뙤약볕을 견뎌내는 수고가 필요한 곳이 문화공장이다. 그래야 공장은 문화예술의 영예로운 훈장을 달고 다시 우리에게 꿈과 위안을 주는 문화공장으로 새롭게 돌아올 것이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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