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정재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클래식 프로젝트 아시아 최초 계획

경기도 대표 문화예술공연기관인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최근 1년간 돋보이는 클래식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였다.

올해로 3회째 열린 국내 유일 단일 악기 축제 ‘피스&피아노 페스티벌’, 유망한 신인음악가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도민에게는 무료 음악회를 선물하는 ‘문화나눔Win-Win콘서트’, ‘제1회 경기실내악축제’ 등이다.

여기에 지난 20일 막을 내린 ‘DMZ 2.0 음악과 대화’는 포럼과 콘서트를 결합한 신선한 기획으로 주목 받았다. 꼭 1년 전 취임한 정재훈 도문화의전당 사장의 이력이 빚은 결과다. 정 사장은 줄리아드 음대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 귀국 후 오랫동안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르 편향’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일단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면서 “외부에 보이기는 클래식 공연 및 프로그램이 많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내실 다지기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앞으로 또 다른 변화와 주목받는 프로그램의 탄생이 기대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공공예술기관의 리더는 처음이었다. 생각과 다른 지점이 많았을 것 같다. 취임 1주년 소회를 밝힌다면.

A 취임 초 공공기관에서 수익 창출을 우선시하지 않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난관이나 장애물까지는 아니더라도, 경기도에 예산을 신청하는 과정이나 영리 사업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사실이 생소하고 새로웠다. (나는)공연이든 전시든 모든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많은 관객과 만나야 그 의미,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문화의전당과 도내 공연장에 좀 더 많은 관객이 오게 만들고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수익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도립극단을 대중에게 가장 인기 많은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으로 변화시킬 생각도 했다. 물론 생각에서 끝났다.(웃음) 참 많이 혼났다. 순수예술의 가치, 공공기관의 역할 등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다. 수익창출보다 공공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공기관으로서의 방향키를 잡았다.

Q 공익 추구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특히 정 사장만의 경험을 살린 클래식 프로그램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을 그 이유와 함께 꼽는다면 무엇인가.

A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데, 딱 그렇다. 물론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20일 폐막한) ‘DMZ2.0 음악과 대화’다. 하지만 전부 다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 중 ‘제1회 경기 실내악 페스티벌’의 경우 서울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장르를 경기도민에게 알리고 싶어서 마련한 것이었다. 보통 음악회를 간다면 오케스트라 혹은 솔리스트의 연주를 보러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내악은 실력있는 솔리스트가 굉장히 섬세하게 주고 받으며 어우러져 훌룡한 하나의 음악을 만든다는 차이점이 있다. 배려와 호흡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실내악이다. 그 좋은 음악을, 클래식의 색다른 매력을 도민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특히 도문화의전당이 도립문화예술기관인만큼 공연을 용인, 고양, 안양 등 지역 공연장으로 확장해 좀 더 많은 도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다.

올해 실내악이 무엇인지 맛을 보는 해였다면, 내년에는 서울에서도 보 기 힘든 유명한 연주자들과 프로그램을 구성해 서울 관객까지 내려와서 보고 싶은 페스티벌로 기획 중이다. 도민이 자랑스러울 만큼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Q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해 공연기회를 주고 그 음악회를 도민에게는 무료로 보여주는 ‘문화나눔Win-WIn 영아티스트콘서트’는 정 사장의 연주자 시절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장 같다.

A 최근 이름난 연주자들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10대 때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큰 것, 아니 전부였다. 그런 기회를 잡기 힘들었다. 다만 미국에서는 커뮤니티나 후원자 등이 잘 구축돼 있어서 한국보다 기회가 주어지는 편이었다.

그 당시 무대에서의 행복감, 다른 친구들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각인돼 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더 성장하려면 이 젊은 음악가들이 클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하는 게 의미있고 공공예술기관으로서 보람있는 작업이라 생각했다.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프로젝트라 생각하며,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Q 바이올리니스트 정재훈, 도문화의전당 사장으로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연주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없나.

A 악기 연습은 마음 먹으면 꾸준히 해야 한다. 하루 이틀, 1~2주 쉬고 다시 시작하면 연습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게다가 도문화의전당 사장이 되고 나선 연주를 할 시간도 없다.

일요일마다 레슨을 하긴 하지만, 내 개인적인 연주 활동은 없다. 아쉬움보다는, 좋은 점이 생겼다. 예전에는 음악이, 연주가 전부였다. 그래서 항상 경쟁이었다.

음악회를 가서도 정말 잘하는 상대를 보면 숨이 막히고 연습할 생각만 들 정도로 경쟁심을 느끼거나 못하는 상대를 만나면 ‘저 정도 하려면 뭐하려고 무대에 올랐나’라며 비교 평가했다.

지금은 이것을 내려 놨다. 경쟁심을 내려 놓으니 이제서야 진짜 어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지 그 내용이 들린다. 좀 부족한 연주자를 봐도 격려하게 되는 등 포용력이 생겼다. 감상의 폭이 넓어졌다. 관객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게 돼 아쉬움은 없다. 만족스럽다.

Q 연주자가 아닌 기획자, 문화예술기관 CEO로서 가장 많은 역량을 발휘한 것이 ‘DMZ 2.0 음악과 대화’다.

A 전국 각 지역마다 각각의 특색을 담은 문화 축제가 있다. 강원도에 대관령음악제, 통영에 통영음악제, 부산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등이 그렇다. 하지만 경기도는 아직 그만한 문화 축제가 없다. 우리 도의 문화적 자산인 DMZ를 이용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를 고민했다.

특히 언어적 소통(포럼)과 음악적 소통(콘서트)이 공존하는 국제적 프로젝트를 지향했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창의는 연결”이라고 말했다. 아이폰이 컴퓨터, 전화, MP3 등의 연결로 탄생했듯, 창의적인 포럼과 새로운 방식의 음악감상 기회를 연결하는 것을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예로 기존의 음악회가 모든 연주곡을 사전에 알려주는 것과 달리 아티스트에게 주제를 전달하고 직접 가장 어울리는 연주곡을 선곡하는 세계 유일의 방식을 도입했다. 관객이 유명 연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티스트의 의도를 공감하는 ‘소통’이 이뤄지길 바랐다.

Q 비무장지대인 DMZ를 꿈과 희망, 미래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설정하는 등 ‘경기도’ 문화를 만드는 데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경기도 문화정책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면.

A 경기도는 제2판교밸리, 곤지암스포테인먼트밸리, 뮤지엄파크, 농생대부지 ‘문화상상센터’등 다양한 문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 기관의 경우 구상에 함께 하기보다는 이미 되어 있는 정책 추진에 참여하는 형태로, 한계가 있었다. 우리 기관이 가진 특성을 기반으로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담길 수 있도록 정책에 참여기회가 넓혀져 폭넓은 경기도 문화정책이 이뤄지는데 일조하고 싶다.

Q 내년에는 그 생각을 실현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A 일단 신규사업보다는 올해 만들어 놓은 실내악페스티벌, 윈윈 영아티스트 콘서트, DMZ 2.0 음악과 대화 등의 행사를 (나의) 임기 후에도 개최할 수 있도록 탄탄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차별화 작업을 진행하겠다.

내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인 클래식 분야 프로젝트가 이뤄질 것이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아티스트들을 섭외해 경기도문화의전당 무대에 설것이다. 더불어 도립국악단, 도립무용단, 도립극단 등의 해외공연을 추진해 민간이 하지 못하는 고유의 순수예술을 세계무대에 알리겠다.

Q 예산이 많이 필요한 사업들이다. 한정된 예산과 공익을 추구하는 기관의 리더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A 사실 문화예술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안된다. 퀄리티가 떨어지고 좋은 콘텐츠가 없으니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악순환이다. 내년에는 예산 상황도 좀 더 좋아지고 문화예술계 안팎으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본다.

(나는)후원금과 협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도민이 소액이라도 참여해 후원하는 것이 미국식인데,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그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분들이 앞장서서 문화예술에 관심 갖고 후원하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 이부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뛰겠다.

Q 임기를 마친 이후 어떤 모습으로 살 것 인가.

A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기본 생각이다. 답이 안될수도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 기획이건 마케팅이건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싶다.

류설아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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