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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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미국의 최대 규모 세일 행사 기간이다. 정확히는 11월 네 번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다음날 금요일을 일컫는다. 미국의 기업들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이어지는 ‘홀리데이 시즌’에 1년 중 가장 큰 폭의 할인 행사를 한다.

추수감사절 이후 세일 행사는 1920년대부터 있었다. 현재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이 시기에 이뤄지는 소비는 미국 연간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Black(검다)’라는 표현은 상점들이 장부에 적자(Red ink) 대신 흑자(Black ink)를 기록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제조업체들이 직접 참여해 재고떨이에 나서 최고 90%까지 할인을 한다. 월마트, 아마존, 타깃, 메이시스, 베스트바이 등의 유통업체들도 참여해 절반 이하의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 텔레비전이나 노트북 같은 가전제품이 할인폭이 커 인기가 많다.

이 시즌이 되면 ‘찜’해뒀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매장 앞엔 전날 저녁부터 줄을 길게 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업체들도 평소보다 이른 자정이나 새벽에 문을 연다. 개장하자마자 먼저 물건을 차지하려는 소비자들 간에 쟁탈전이 벌어져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도입했다. 지난 1일 시작해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전국의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대형유통업체를 비롯해 전통시장, TV홈쇼핑, 온라인 쇼핑몰까지 2만7천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원조’ 블랙 프라이데이와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연말까지 진행되지만 우리는 2주간만 열린다. 미국은 제조업체 주도로 이뤄지는데 반해 우리는 정부가 주도하고 유통업체가 참여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미끼 상품만 크게 할인한다든지, 품목만 많고 할인율은 정기세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소비자들의 체감 할인율이 낮다.

정부가 투자와 수출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소비 활성화와 내수 진작을 위해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를 도입한 것은 이해되지만 제대로 정착 시키려면 과제가 많다. 행사가 소비자를 우롱하는 반짝 이벤트에 그치질 않길 바란다. 그래야 지속성을 갖고 내년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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